'독주·완성도·대선 부담론' … 여, 언론중재법 미룬 속사정

2021-09-01 11:23:46 게재

합의 직전 자체 여론조사서 '여야 합의처리' 50% 넘어

지지층 "차·포 떼고 이름만 남았다" 실효성 재논의 요구

대선 영향력 최소화 … "9월 안에 당이 책임지고 끝낸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9월 27일로 미뤘다. 입법독주라는 비난을 자초한 몰아치기 대신 '숨 고르기'를 택한 것이다. 개정안 마련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 '독주 프레임' 여론을 의식한 영향이 크다. 또 고속처리 과정에서 훼손된 법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대한 요구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지역경선에 들어간 대선일정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정무적 판단도 실렸다.
여야, 언론중재법 '협의체 구성· 9월 27일 상정' 합의│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위한 협의체 구성, 9월 27일 본회의 상정 등의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전·현직 국회의장의 만류 =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8월 31일 원내대표간 합의를 통해 여야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협의해 9월 27일 본회의에서 상정·처리하기로 했다.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기존 안을 토대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 각 2명, 양당 추천 언론계·전문가 2명씩 8명이 9월 26일까지 수정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독자처리 대신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해 논의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쟁점이 됐던 고의·중과실의 추정, 징벌적 손해배상, 기사열람차단 청구권 등에 대한 여야와 언론·전문가 그룹의 의견이 달라 수정안 마련에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여야 합의 전까지 민주당 내부에선 언론중재법 처리를 두고 강경·신중론이 교차됐다. 법사위 처리 이후 8월중 처리를 공언했던 송영길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주말새 입장을 선회한 것이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다. 당내 의원들 가운데 신중론을 주장한 의원들은 10여명에 불과했지만 외부의 시각은 달랐다. 당 고문단으로 활동하는 임채정 김원기 문희상 등 전직 국회의장들의 만류와 박병석 의장의 여야 합의처리 입장이 컸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지난 주말 자체 여론조사에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60%가 동의하는데 여야 합의처리를 요구하는 의견이 50%를 넘었다"면서 "국민 공감이 있는 사안에 우군을 늘려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모아지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법안 실효성 높여야" 적극지지층 요구 = 강행처리를 통해 마련된 법안에 대해 청와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고려 대상이었다. 여당이 마련한 법안을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당청간의 갈등 등 새로운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여야 합의처리 합의이후 청와대는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철희 정무수석을 중심으로 가짜 뉴스에 의한 피해 구제와 언론자유 보장 등을 놓고 여당과 의견을 주고 받았다.

개정안 처리를 미룬 것에 대한 적극지지층의 반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사위까지 통과한 상황에서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여당 리더십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뒤로 미룰수록 개혁조치 미진에 대한 지지층의 불만까지 누적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여야의 8인협의체가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강경론을 대변한 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기왕 이렇게 됐으니 법안 후퇴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며 "소란스러운 한 달이 될 것 같다"고 적었다. 수정안 마련까지 시간을 번 이상 법안의 완성도를 높여 지지층 요구에 답한다는 계산이다. 손해배상청구의 하한선을 두거나 '조작'과 같은 모호한 해석 등에 대한 숙의과정을 거쳐 개정안이 실효성을 갖도록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31일 "협의체에서 합의가 안 되면 진짜 통과시키는 것"이라며 강행 처리를 시사했다.

◆대선 후보 부담 최소화 = 민주당은 이번 합의처리 결정 과정에서 대선 영향력을 낮추는데 주력한 인상이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송영길 대표는 여야 합의처리 시한을 두고 '추석 연휴 이전'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이 지역순회 경선을 시작한 상황에서 여야간 극심한 대치가 예상되는 법안처리를 길게 가져가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원내지도부는 여야간 실질적 협의처리를 위해 최소한 1달의 시간의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결국 '9월 내에 처리'로 정리됐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정쟁적 요소가 있는 사안은 10월 10일 전에 끝낸다는 것이 송 대표의 기본 인식"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은 10월 10일 대선후보 경선을 마칠 예정이다. 일각에선 여야가 9월 27일 본회의 상정을 합의한 것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민주당 대선경선은 9월 25~26일 호남권 순회경선 결과가 나온다. 큰 이변이 없는 한 호남 경선 이후 내년 대선후보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권의 대선후보 윤곽이 확실시 된 상황에서 언론중재법 상정에 대한 여론전이 중첩되거나 혹은 묻힐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여당의 이번 선택이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묘수가 되거나 또는 악수가 될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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