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제조 부활' 더딘 출발

2021-09-03 11:09:19 게재

아시아타임스 "미 정치인들, 반도체 부활 다짐하지만 행동보다 말이 쉬운 법"

2019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 스마트폰의 글로벌 점유율은 18%에서 4%로 급감했다. 화웨이를 악마화하고 제재를 단행한 미국 정치인들이 반색할 일이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전세계 5대 스마트폰 제조사는 삼성 19%, 샤오미 17%, 애플 14%, 오포 10%, 비보 10%였다.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중국 3대 기업의 점유율 합계는 37%에 달했다. 샤오미는 사상 처음으로 애플을 제쳤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라이트스트림 리서치'의 애널리스트 스캇 포스터는 2일 아시아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은 중국과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형국이다. 한쪽을 치니 다른 3곳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샤오미와 오포, 비보는 모두 미국의 퀄컴 프로세서를 사용한다. 퀄컴은 해당 프로세서를 미국에서 설계하고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에 위탁제조한다. 즉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퀄컴은 중국에서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화웨이가 잃은 기회를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꿰찬 덕이다. 퀄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아카시 팔키왈라는 지난 7월 28일 실적보고에서 "우리는 4~6월 2분기 매출 약세를 점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실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미국은 당초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는 구상이었다. 중국의 5G 스마트폰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미국인의 삶의 방식에 존재론적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지난 6월 '닛케이아시아'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애플의 200대 공급업체 가운데 51곳이 중국 기업이었고, 48곳이 대만, 34곳이 일본, 32곳이 미국이었다. 21개 공급업체는 베트남에 소재했다. 하지만 그중 7곳이 중국 소유 기업이었다. 중국과 베트남, 태국, 인도 소재 애플 공급업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대만과 일본, 미국에 소재한 공급업체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스캇 포스터는 "이는 중국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이 바라는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과 기타 비용 구조를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애플의 한 공급망 관리자는 닛케이아시아에 "중국 공급업체들은 비슷한 접근법을 취한다. 중국 업체들은 다른 나라 업체들이 꺼리는 저마진 사업 적극적으로 매달린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점차 애플과 협력하는 수준을 높인다. 결국 다음번엔 보다 많은 사업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도쿄일렉트론은 올 2분기 매출 중 35%를 중국에서, 10%를 미국에서 올렸다. 같은 기간 도쿄일렉트론의 미국 경쟁업체인 램리서치는 매출의 37%를 중국에서, 5%를 미국에서 올렸다. 최첨단 EUV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은 2분기 매출의 17%를 중국에서, 6%를 미국에서 얻었다. 미국 정부는 ASML의 주요 장비를 중국 기업에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과 전문가들, 업계 경영자들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 감퇴 기조를 역전시키겠다'고 1년 넘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20년 9월 다음과 같은 골자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은 경제의 경쟁력과 국가안보, 공급망 회복탄력성에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 소재한 글로벌 반도체 제조 비중은 지난 수십년 간 급감했다. 경쟁국 정부들이 자국 업체들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지급한 반면 미국 정부는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에 대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미국에 주요 반도체 제조시설의 수준을 끌어들이며, 수만개의 관련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SIA는 보고서 결론에서 "미국 연방정부가 500억달러를 투자한다면, 개발단계에 있는 새로운 반도체 시장에서 약 25%의 글로벌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정부 지원이 없다면 6%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반도체제조장비재료협회'(SEMI)는 지난달 24일 "9월이 되면 의회가 해야 할 첫번째 과제는 '반도체제조 인센티브법안'(CHIPS for America Act)에 자금 지원을 승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올해 초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서 통과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올해 4월 백악관은 공급망보고서에서 반도체 기업 인센티브와 연구개발 자금으로 520억달러를 요청했다. 미상원은 6월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다. 여기엔 상무부의 인센티브 부여 프로그램에 책정된 긴급자금 390억달러, 반도체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120억달러, 미국국방기금을 위한 CHIPS에 20억달러가 포함됐다.

SEMI는 "그러나 하원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에 여전히 자금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SEMI는 이에 더해 의회에 '미국산 반도체 촉진법'(FABS)을 통과시키라고 강력 촉구했다. 이 법은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대해 약 25% 세제환급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SEMI는 "전세계적 수준에서 경쟁력 있는 법인세제를 갖춰야 반도체 업계의 혁신과 이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캇 포스터는 "미국 정치권은 반도체산업에 대한 외국 정부의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비판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종종 주장한다"며 "하지만 미의회는 미국 반도체업계에 대한 각종 지원과 혜택을 서둘러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이니셔티브 중 하나는 대만 TSMC를 압박해 미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짓게 하는 것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 역시 이 정책을 이어받았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약속에 확신을 얻은 TSMC는 지난 6월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반도체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TSMC 회장 마크 리우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은 TSMC가 미국에 제조공장을 짓기로 한 결정적인 동인이다. 우리의 요청은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경우 늘어날 비용 격차를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메워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은 TSMC의 미국행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인텔 CEO 팻 겔싱어는 6월 24일 폴리티코에 '단순 제조를 넘어 : 반도체 생산 투자는 미국의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냈다. 겔싱어는 "연방정부는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능력 제고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에 소재하면서 특허와 고급인력 등 가장 핵심적인 자산을 미국에 둔 기업에 미국인의 세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보조금을 탐내는 외국 반도체제조사들은 높은 가치의 지적재산권이나 수익성 높은 최첨단 제조 역량은 자국에 그대로 둔 채 미국 정부에 '최첨단 칩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불안정하나마 외국 공급망에 의존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는 단기적 능력 문제 너머를 봐야 한다. 그리고 미국 반도체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겔싱어는 핵심을 짚었다. TSMC는 2024년부터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 공정기술을 활용한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TSMC 대만공장에선 내년부터 5나노미터보다 한 단계 진화한 3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할 방침이다. 거기에 더해 대만 정부는 7월말 TSMC에 새로운 공장 건설을 승인했다. 2나노미터 기술 공정이다. 2023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텔과 애플은 TSMC가 만들 3나노미터 공정기술의 첫번째 고객이 되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여전히 7나노미터 양산에 성공하려 애를 쓰고 있다. 극소형화 수준과 관련해 TSMC는 인텔보다 2세대 앞서 있다. 게다가 계속 빠르게 치고나가고 있다.

겔싱어의 인텔은 TSMC를 따라잡고 경쟁하고 능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3월 23일 인텔은 2021년 자본지출액을 140억달러에서 200억달러로 늘려 반도체 생산시설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시장은 애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4월 9일 인텔의 주가는 68.49달러로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이후 21% 하락해 8월 31일 기준 54.09달러를 기록했다. 이유는 뭘까.

미국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확대하길 원한다. 인텔의 최고 경영진들 역시 이를 원한다. 하지만 월가는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업계가 아닌 금융권 입장에선 인텔이 대만에 반도체 제조를 위탁하는 게 더욱 수지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텔 자체적으로도 이중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월 "인텔이 TSMC의 경쟁기업 중 하나인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잠정액수는 약 300억달러다. 스캇 포스터는 "M&A는 최고경영자가 결단하는 것이긴 하지만 만약 이 거래가 성사된다면, 인텔은 올해 자본지출 예산보다 1.5배 더 많은 돈을 인수금액으로 쓰게 된다"며 "그러나 미국 반도체 생산능력엔 단 한장의 실리콘 웨이퍼도 보태지지 않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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