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사업장 산재예방
교통사고도 줄였는데 산재사고 왜 못 줄이나
산업재해예방 예산 국고지원 시급 …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규제 예외규정 없애야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고용창출과 안정에 큰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지만 산업안전보건활동 측면에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국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62명이다. 이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전체 사망자의 24.2%를 차지했다. 50인 미만으로 확대하면 63.2%, 300인 미만까지 포함하면 83.6%에 달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졌다. 지난 1월 제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도 5인 이하 사업장을 제외하고 50인 이하 사업장은 3년간 적용을 유예됐다.
산재예방 사업 예산이 주로 민간에서 조성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산업재해예방기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산업재해 예방사업 대상이 산재보험가입 노동자로 제한되고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국민은 예방적인 보호조차도 받지 못한다. 특히 5인 이하 영세 사업장의 산재를 줄이는 위험시설물 개선사업을 지속하고 안전보건문화 인식을 확대할 수 있는 일반회계 투자가 절실하다.
산업재해(산재) 대부분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산재예방 사업의 정부 일반회계 예산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공개한 '2019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688만8000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했다. 종사자는 1744만명으로 82.7%에 달했다. 기업수는 2018년 대비 3.8%, 종사자수는 2.0% 증가했다. 또 매출액은 2.6% 증가한 2732조1000억원으로 48.7%를 차지했다.
이처럼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고용창출과 안정에 큰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지만 산업안전보건활동 측면에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취약한 산업안전이 중소기업 생산성을 악화시키고 노동자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기업규모 작을수록 산재 증가 = 산업 규모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재해자가 증가한다.
고용노동부 '2020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국내 산업재해자는 10만8379명이다. 이중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재해자는 3만362명으로 전체 산업재해의 31.2%를 차지했다.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면 8만910명으로 전체의 74.7%에 달한다.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면 90.3%(9만7916명)에 달한다.
산재사망자 현황도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 국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62명이다. 이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50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24.2%를 차지했다. 50인 미만으로 확대하면 1303명으로 63.2%나 된다. 300인 미만까지 포함하면 1723명으로 83.6%에 달했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윤준병 의원(더불어민주당·전북 정읍고창)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하다 적발된 사례는 모두 4646건에 달했다. 산재 미보고 또는 은폐 사업장은 50인 미만이 2723건(58.6%)에 달했고,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하면 4021건(86.6%)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가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졌다는 점을 먼저 꼽는다.
5~20인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나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다. 20~49인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담당자 선임 대상이지만 전문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권순길 산업안전협회 안전지원국장은 "안전관리인 선임 의무가 30인 이상 기업부터 부과됐는데 1997년 50인 이상으로 완화됐다"면서 "1995년 기준 50% 수준이던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 점유율이 지금은 70%대로 올라갔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예외 적용 = 산재가 줄어들지 않자 국회와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업주 처벌 수준을 강화했다. 2019년 산안법 전부개정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개정 산안법 시행 이후 뚜렷한 개선 효과가 발견되지 않자 지난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5인 이하 사업장을 제외하고 50인 이하 사업장은 3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본부장은 "문재인정부는 국민생명 지키기를 통해 산재 사망자를 500명까지 줄이겠다고 했다"면서 "교통사고를 줄일 때처럼 중대재해처벌법 후속 입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 산업재해 예방기금 의존 = 산재예방 사업 예산이 주로 민간에서 조성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산업재해예방기금)에만 의존하고 국고지원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재예방 감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현장개선 등에 일반회계를 통한 국고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호구 산업이다. 보호구는 산업현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보호구산업의 현실에 비춰보면 R&D 예산지원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병훈 안전보호구협회 사무국장은 "현장 노동자에 대한 보호구의 올바른 보급과 사용이 산재예방의 중요한 요인이고 보호구 산업육성이 산업재해 예방과 직결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에 대한 지원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보호구 산업에 대한 폭넓은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산재예방에 투자하는 일반회계 예산은 극히 미미하다. 산업재해예방기금은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의 운영을 기반으로 한다.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사업주의 강제가입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이다.
2020년 기금 지출총액 7조770억원 중 산재예방사업 예산은 6481억원(9.2%)이다. 산재예산 사업 예산 중 일반회계 전입금은 155억원(0.22%)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 예방사업 대상이 산재보험가입 노동자로 제한되고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국민은 예방적인 보호조차도 받지 못한다. 특히 5인 이하 영세 사업장의 산재를 줄이는 위험시설물 개선사업을 지속하고 안전보건문화 인식을 확대할 수 있는 일반회계 투자가 절실하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50명 이하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가 없어도 되게 만들어줬고 안전보건 관리규정이 없어도 된다"면서 "산재사망자 80% 정도가 이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국회와 정부가 신호를 잘못 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일시적으로 정부가 감독과 점검을 강화한다고 해서 중소사업장의 산재 취약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서 "장기적으로 중소사업장의 산재를 줄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접근법을 찾아서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손실이 더 크다 = 국고지원 확대가 사회적 손실을 줄여 결국 국가경제에도 득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장섭 의원(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서원)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산업재해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이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이 159조원에 이른다.
연간 경제적손실 추정액은 △2015년 20조원 △2016년 21조원 △2017년 22조원 △2018년 25조원 △2019년 29조원 △2020년 30조원 △2021년(5월 말) 13조원으로 최근 7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재해자수도 증가추세다. △2017년 8만9848명 △2018년 10만2305명 △2019년 10만9242명 △2020년 10만8379명이다. 2018년 이후 매년 10만명 이상의 산업재해자가 발생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2015년 1810명 △2016년 1777명 △2017년 1957명 △2018년 2142명 △2019년 2020명 △2020년 2062명으로 증가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는 2006년과 2008년, 그리고 2020년 3차례나 산재예방사업 강화를 위해 기금지출예산 총액의 3% 범위에서 정부 출연금으로 세출예산에 계상하도록 합의했으나 이행 수준은 낮다.
노사정 합의는 산재보상보험법에 포함됐다. 그러나 2021년 실제 산재예방 사업의 일반회계 전입금 규모는 0.13% 수준인 100억원에 불과하다. 노동계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 제95조의 3항을 '기금지출예산 총액의 100분의 3의 범위'에서 '기금지출예산 총액의 100분의 3 이상'으로 개정해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본부장은 "고용부나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늘려주지 않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법을 3% 이상으로 바꿔서 2500억원 정도를 일괄적으로 받아내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지금과 같은 속도로 국고지원 규모를 늘리면 목표 도달까지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