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도시 서울' 균형발전이 답이다 | 5.삶의질 차이 낳는 문화 인프라-문화시설, 갈 곳 많은데 볼 것 부족

서울시 전체예산 중 문화예산 '1.29%'

2021-11-24 11:30:12 게재

문화분야 자체가 불균형 상징 … 시설 운영·관리, 주민 참여 길 열어야

서울은 말 그대로 문화 도시다.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고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다. 교통 주거 등 다른 분야와 달리 강남북 불균형 문제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재 등 전통 문화시설은 종로구 용산구 중구 등 강북 도심권에 집중돼 있어 다른 분야처럼 강남편중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편차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문화기반시설이 많이 분포한 자치구 5곳과 적은 자치구 5곳을 비교하면 상위 5개구에 31.7%가 몰려 있고 하위 5개구에는 10.7%만 분포해 있다. 가장 많은 종로구에는 300개가 넘는 문화시설이 있지만 광진구 도봉구 동대문구 성동구 중랑구 금천구 등은 100개도 채 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들 노력과 시민들의 문화향유 욕구 상승이 격차 완화를 견인했다. 서울 자치구들은 문화예산을 꾸준히 늘려왔다. 25개 자치구 문화예산 총합은 2015년 1556억원에서 2019년 2395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꾸준한 투자는 도서관 공연장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기반시설이 골고루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구 10만명당 공공도서관 수는 강남구(9.9개) 서초구(10.7개)보다 강서구(13.1개) 은평구(14.8개)가 오히려 많다. 2015년엔 10개뿐이던 자치구 문화재단도 2019년에는 20개까지 늘어났다.

◆짓는데만 신경쓰고 운영비는 '찔끔' = 문화 분야 불균형은 시설 수, 분포 등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설을 만드는데는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운영비는 턱없이 적게 편성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시립북서울미술관은 430억원을 들여 2013년 완공됐다. 미술관의 연간 운영비는 인건비(약 20억원), 사업비(약 31억원) 등 50억원 규모다.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돈화문로 전통문화시설은 상설전시실과 돈화문국악예술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5년 456억8600만원을 들여 지었는데 연간 운영비는 33억원(돈화문국악당 18억7600만원, 서울우리소리박물관 15억3200만원)에 불과하다. 문화비축기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옛 석유비축기지를 전시·공연 등 문화시설로 바꾸고 의욕적으로 탄생했지만 한해 운영예산이 13억원에도 못 미친다.

언뜻 이 정도 운영비는 적은 예산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콘텐츠가 생명인 문화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 박물관은 프로그램을, 미술관은 주요 전시 콘텐츠를 수시로 바꾸고 강화해야 시민들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

콘텐츠 준비없는 졸속 건립이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 사례가 경희궁 앞 돈의문박물관마을이다. 당초 서울시는 이 자리를 뉴타운 아파트 단지의 공원으로 만든다며 거주자들을 몰아내놓고는 계획을 급변경, 근현대 문화를 보존한 박물관마을로 급조했다. 날림 계획은 총체적 부실로 이어졌다. 시설의 엉거주춤한 정체성에 관람객 발길은 끊겼고 수차례에 걸친 운영계획 변경, 예산 투입에도 첫 단추를 잘못 낀 후과는 갈수록 커졌다. 서울시가 그간 돈의문박물관마을에 투입한 예산은 2019년 25억5200만원, 2020년 24억9200만원, 2021년 26억4200만원 등 80억원에 육박한다. 2017년 처음 문을 열 당시 마을 조성에 들어간 사업비만 300억원이 넘었다.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관계자는 "부족한 운영비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기반시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 문제"라며 "문화분야는 콘텐츠에서 승부가 갈리는데 이 같은 일이 반복되니 지어만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시설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수익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민간 시설과 달리 공공 시설은 단체장 치적 쌓기에 활용하느라 짓는데만 열을 올리고 후속 투자를 하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잦다"며 "장기적 계획 없는 졸속 건립은 부실 운영의 원인이 되고 답 없이 계속 예산을 써야 하는 '세금먹는 하마'가 된다"고 말했다.

◆랜드마크 보다 '지역화'가 중요 = 랜드마크 건립 경쟁도 지양해야 할 과제다. 운영비 등 콘텐츠 측면보다 초기 건립비에 예산을 쏟아붓는 관행도 여기서 비롯된다. 박선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은 "문화시설들이 소속된 지역과 주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공공기관이나 중앙부처에서 직영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주민이 운영과 관리에 참여하고 지역의 사랑을 받는 문화자산이 될 수 있도록 운영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들이 운영에 책임을 지고 지역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야만 끊임없는 혁신과 트랜드에 무관하게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문화시설 관리·운영이 중앙이나 공공기관, 전문가 위주여야 한다는 기존 생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 불균형의 핵심 문제는 '문화 분야 소외'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산 규모는 늘었지만 지자체 전체 예산 중 문화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쥐꼬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문화예산 비율은 본 예산 대비 1.59%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5년 1.24%에서 규모는 늘었지만 여전히 '1%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는 더 심각하다. 2022년도 서울시 전체 예산 44조원 중 문화 분야 예산은 5950억원으로 달랑 1.29% 수준이다. 문화도시 서울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치다. 서울 내 문화 불균형을 논하기 이전에 문화 분야 자체가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규복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체육과 관광 분야를 모두 합해도 전체 예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1.78%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간신히 유지하는 처지"라며 "문화예술 인력과 문화 발전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려면 예산 비중이 최소 3%까지는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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