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보 최대개방
합천보 하나 열었는데 낙동강 물빛이 달라졌다
2월엔 농업용수 때문에 다시 수문 닫고 담수 예정 … 시민환경단체 "낙동강 취양수시설 하루빨리 개선을"
'4대강 살리기'란 이름 아래 강바닥을 준설하고 4대강 한가운데 18개의 거대한 보를 막은 4대강사업.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22조원의 예산이 들어간 초유의 국책사업이었다. 엄청난 생태계 혼란이 예상됐지만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는 아주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통과됐다.
1년 사계절을 관측해야 할 생태조사는 불과 몇달 만에 끝났다. 낙동강에서만 5억루베(㎥)의 골재를 파내겠다는 계획에 대해 환경부는 '3단계 완충저류조와 오탁방지망을 이용하면 오탁수(흙탕물)가 강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며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4대강은 '스스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3~6미터 깊이로 준설했던 하상은 다시 모래와 자갈로 채워졌고 3개 보를 완전 개방한 금강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녹조가 사라졌다.
준공 이후 최초로 수문을 활짝 연 합천보 상류에서 다시 돌아온 낙동강을 만났다.
6일 오전 10시 낙동강 합천보 1km 상류 경남 창녕군 이방면 우산리 어부 선착장 앞.
아직 젖은 느낌이 드는 모래톱 위에 아침햇살이 내려비친다. 모래톱 위에서 '왜가리'들이 밤새 서리에 언 날개를 말리고 있다. 수문 개방 전에는 선착장에 앉아 깊은 물에 발도 못 담그고 추위에 떨었던 새들이다. 그 뒤로 가동보 수문 3개를 완전히 올린 합천보가 보인다.
여기서 드론을 띄워 1km 상류 율지교까지 이어지는 넓게 펼쳐진 모래톱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수만제곱미터에 이르는 은백색 모래톱이 넓은 들판처럼 펼쳐진다. 그 위로 잔잔한 강물이 천천히 흘러간다.
◆회천-낙동강 두물머리의 모래 삼각주 = 율지교 상류에서 낙동강은 '모래강' 회천을 만난다. 회천은 '낙동강 중류의 내성천'이라 불린다. 그만큼 모래가 많기 때문이다.
대가천이라고도 불리는 회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다. 유로연장은 78㎞, 유역면적은 781.42㎢이다. 합천 가야산 북쪽 김천시 증산면에서 발원해 성주군 가천면-대가면-수륜면, 고령군 운수면-대가야읍-개진면-우곡면까지 흘러 낙동강을 만난다.
회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는 회천에서 내려온 모래가 커다란 모래톱 삼각주를 만들었다. 이곳 두물머리 남쪽은 경남 합천군 덕곡면, 북쪽은 경북 고령군 우곡면이다. 합천보는 경남 합천군과 창녕군 사이에 있지만 담수구역은 곧바로 경북 고령군으로 이어진다.
회천의 넓은 모래톱과 맑은 강물은 멸종위기1급 '흰수마자' 서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흰수마자는 모래강 낙동강을 대표하는 멸종위기 물고기다. 4대강사업 전에는 낙동강 전역이 흰수마자 서식지였다.
지금은 삼강주막 하류 낙동강 일부 구간, 황강-낙동강 합수지점, 남강 일대에서 고립된 집단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최대 서식지였던 내성천에서도 영주댐 담수 이후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3개 보 개방 이후 매년 서식지를 넓히고 있는 금강의 흰수마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호수로 정체됐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 = 경북 고령군 우곡면 우곡교 상류에는 강물 한가운데 긴 막대기 형태의 모래톱이 펼쳐졌다. 수백마리 '민물가마우지'들이 모래톱에서 쉬다가 강물 속으로 날아들었다. 모래톱 오른쪽 얕은 물 속에는 '대백로' 30여마리와 몇몇 왜가리들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쉬고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져도 흐르는 강물은 섭씨 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겨울철새인 대백로들은 이런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며 잠도 자고 물고기도 사냥한다. 이런 물속에는 물새들의 천적인 '삵'도 접근하기 쉽지 않다.
취재에 동행한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생태보전국장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 그대로 모래톱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이 모래톱이 더 크게 발달하면 낙동강 루트를 따라 이동하는 '흑두루미'들도 내려앉아 쉬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반가워했다.
마지막 방문지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과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사이를 가로지르는 박석진교. 강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모래톱 위를 얕은 강물이 거의 투명한 상태로 흘러간다. 뒤로는 최근 달성군이 케이블카사업을 포기한 비슬산이 우뚝하다.
강물도 1미터 이내로 얕아서 가슴장화를 신으면 건너편까지 건너갈 수도 있다. 당장 여기서 흰수마자가 발견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합천보 하나 열었다고 낙동강이 되살아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일대 낙동강은 재작년 8월 대홍수로 낙동강 본류 제방이 터졌던 곳이다. 십수년 만에 쏟아진 폭우에 악취를 풍기며 퇴적됐던 합천보 상류 강바닥이 뒤집혔고 그 위를 강물에 씻긴 깨끗한 모래가 덮었다고 봐야 한다.
여름이라면 녹조 발생 여부로 금방 비교가 되겠지만 겨울이라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넓은 모래톱 위를 흐르는 낙동강은 호수로 정체됐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수문 개방해도 취수에 문제 없도록 = 환경부는 2월 초 다시 합천보 수문을 닫아서 물을 채울 계획이다. 낙동강 인근 농민들이 양파농사 등으로 농업용수를 사용하는 시점이 2월 초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에 쓰는 농업용수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합천보 수위를 내린 상태에서도 지하수는 충분히 뽑아올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하수 문제만 해결되면 본격적으로 양수장을 가동하는 5월 초까지는 합천보 수문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국장은 "낙동강의 유속이 1/10로 느려졌기 때문에 맹독성 녹조가 매년 발생하는 것"이라며 "농민들도 낙동강 물만 쓸 수 있으면 보 수문을 열든 말든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4대강사업 때 이명박정부는 보 관리수위 기준으로 취수구를 설계했다. 원칙대로라면 보 수문을 다 열어도 취수와 양수가 가능하도록 취수구를 만들었어야 했다.
정 국장은 "취·양수장 구조를 개선하면 보 수문을 열어도 취수에 문제가 없다"며 "낙동강 수질도 개선하고 농사용수 공급에도 문제가 없도록 취·양수장 구조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