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구의 전면제재 막을 수 있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술·금융 등 중국 6개 전략분야 점검 … "취약성 여전"
지난 1월 30일 중국이 미국과 벌이는 기술전쟁에 대해 중국 싱크탱크가 매우 혹독한 평가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중국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IISS)은 웹사이트에 공개한 보고서에서 "세계 두 강대국이 벌이는 기술·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에서 중국이 더 막대한 손실을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내용은 반도체와 운영체제(OS), 항공우주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에 크게 뒤처졌다는 것. 하지만 게시 일주일이 안돼 해당 보고서는 웹사이트에서 사라졌다.
러시아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동맹국들은 러시아를 대상으로 전면 제재에 나섰다. 중국은 러시아의 약점을 파고드는 서구의 제재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중국 자체의 약점이기도 하고, 언젠가 중국을 향할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1년 공개된 중국의 전략계획 청사진인 14차 5개년 계획엔 '2025년까지 경제정책의 주춧돌인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서구로부터 자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술의존성을 타파하겠다는 중국 계획의 마감시한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정부는 이를 위해 수십억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동시에 중국기업들에게도 정부의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경쟁국가를 따라잡기 위한 중국의 민관 연구개발(R&D) 지출은 2021년 2조8000억위안(4400억달러)으로 치솟았다. 중국 GDP의 약 2.5%에 달한다. 미국의 3%대 수준엔 못 미치지만, 5년 전 2%대 초반에선 상당히 늘었다.
중국 최대 반도체제조사인 중신궈지(SMIC)는 지난달 11일 '올해 50억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칩 제조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사흘 뒤 영국 스탠더드차터드은행 홍콩지점은 중국 '위안화결제청산시스템'(CIPS)에 직접 연결된 첫번째 외국계은행이 됐다. CIPS는 벨기에 소재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에 대한 중국의 대항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mRNA백신과 농화학, 민간항공기, 반도체, 컴퓨터 OS, 지급결제 네트워크 등 서구 의존도가 큰 중국의 전략분야 6개를 점검했다. 이 매체는 "우리의 결론 역시 베이징대 IISS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일부 발전이 있었지만 서구 의존도는 컸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발전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기술적으로는 복잡하지만 공급망이 방대하지 않은 백신 분야였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개발한 mRNA 기술을 이끄는 인물은 아보겐 바이오사이언스의 CEO 잉보다.
그는 모더나에서 수년 동안 mRNA 기술을 연구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귀국했다. 중국 언론들은 그를 '조국의 부름에 화답한 애국자'라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아보겐은 인민해방군과 함께 mRNA 백신 개발에 나섰다. 개발비로 최소 23억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관영매체는 최근 아보겐 백신의 인상적인 임상 결과를 전했다. 독일과 미국의 mRNA백신이 나온 지 1년반 만이다. 하지만 대량생산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연간 2억도스의 백신을 생산할 전망이다. 올해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생산할 백신은 약 40억도스다.
바이오엔테크는 1년 전 중국 대기업 푸싱제약과 제휴를 통해 mRNA 백신을 중국에 공급키로 했다. 하지만 아직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 황옌중 선임연구원은 "아보겐 백신을 대대적으로 띄우면서 서구의 mRNA 백신 승인은 미루고 있다. 중국정부는 공공의 안전보다 기술자립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농화학 기술 부문에서도 나타난다. 외국의 유전자변형, 유전자 편집 기술은 중국 내 활용이 금지돼있다.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 곡물시장을 통제할 것이라는 오래된 두려움 때문이다.
중국 농업기업들은 자체적인 대안을 개발하고 있다. 다베이농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또 기업인수를 통해 기술을 획득한다. 대표적으로 2016년 중국화공집단공사(ChemChina)가 440억달러를 들여 식물 종자와 농약 등을 판매하는 스위스 신젠타를 인수했다.
하지만 중국 내 곡물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부족해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중국은 지난해 최소 620억달러를 들여 대두와 옥수수, 면화를 수입했다. 이 중 상당수가 유전자변형작물이었다.
지난해 항공기와 관련부품 수입액은 190억달러로 곡물에 비해 낮았다. 이 역시 중국이 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부문이다. 중국상용항공기유한책임공사(COMAC)는 2008년 개발에 착수한 C919 민항기를 올해 첫 인도한다. 개발비로 720억달러 이상이 소요된 C919는 보잉737과 에어버스 A320의 경쟁모델이다. 중국 항공사들은 수백대의 C919를 주문했다.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C919를 완전한 중국산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이 항공기는 외국산 부품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C919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된 터보팬엔진이 기술적 결함을 드러내면서 프랑스 사프란과 미국 GE가 합작한 벤처기업의 엔진이 장착될 전망이다. 또 수백개의 부품들 역시 외국산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종 완제품은 서구 항공기의 복제판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최신기종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구 항공사의 한 관계자도 "C919는 최고의 연료효율성을 내는 에어버스 A320네오 기종에 비해 한세대 뒤처졌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노력도 비슷하다. 글로벌 공급망은 항공기업계와 비슷하게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이 지배하고 있다. 반도체와 관련한 중국의 취약성은 2018년 현실화됐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이동통신장비 기업 중싱통신(ZTE)과 화웨이에 대해 미국 기술을 사용한 민감한 장비의 판매를 막았다.
이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은 2025년 자국이 소비하는 모든 반도체의 70%를 자체 생산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지난해의 경우 자급 수준은 20%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진전도 있다. SMIC는 올해 3곳의 신규공장을 완공한다.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 부문에 수천억위안을 쏟아부었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인재확보전에 나섰다. 미국 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상하이연구소 인재들이 특히 타깃이 됐다. 결국 올해 1월 26일 마이크론은 상하이연구소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CFR의 애덤 세갈은 "그 결과 중국의 일부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국 기술을 쓰지 않은 생산라인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SMIC 등 중국 기업들은 수십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공급망을 국산화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이는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에 수세대 뒤처진 기술이다. 중국은 또 독점시장을 구축한 네덜란드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를 따라잡으려 한다. 이 역시 수년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기술습득이나 공급망 재편성보다는 사용자들의 신뢰 부족과 관련된 부문도 있다. 개인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구동하는 운영체제가 대표적이다. 트럼프행정부는 2019년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뿐 아니라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이용도 막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화웨이 매출은 전년 대비 30% 줄었다.
중국 기업들은 2019~2021년 9월까지 자체적인 운영체제 개발에 약 40억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구글의 오픈소스 시스템에 기반한 '하모니 OS'를 출시했다.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중국 스마트폰이 계속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로 구동되는 실정이다. 중국 데스크톱 컴퓨터 역시 애플의 맥 OS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로 구동된다.
중국 OS는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고전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용가능한 앱이나 다운로드할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이는 다시 범용화를 막는 요소가 되고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이같은 문제는 대안적인 지급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글로벌 자금이동의 대부분은 벨기에 소재 SWIFT와 미국 국내청산시스템인 CHIPS를 통해 이뤄진다. 여기에 국제금융과 무역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달러의 힘까지 보태지면서 미국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이 홍콩에서의 자유 탄압, 신장에서의 인권유린 등을 이유로 중국을 글로벌 금융 인프라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중국은 독립적인 시스템 마련에 애쓰고 있다. 2015년부터 위안화결제를 위한 자체적인 시스템 CIPS 활용을 늘리고 있다. CIPS는 지난해 9월 하루 평균 약 3170억위안의 거래를 처리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CIPS 존재감은 미미하다. CIPS와 연결된 국제금융기관은 80여개에 불과하다. SWIFT의 1만1000개 이상과는 비교가 안된다. 또 지난해 12월 글로벌 국제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은 2.7%로, 2년 전 1.9%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위안화 국제거래의 대부분은 위안화에 대한 외국의 수요가 아니라 중국 국영기업들의 해외 확장에 따른 것이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에 대한 불신이 늘었다. 이는 위안화 범용화에 단기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자립은 중국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며 "자립에는 비용이 따른다. 중국정부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가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