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퇴직 시대 로봇구독 대중화 시동
시간당 최저 8달러 … 블룸버그 "중소기업들, 고임금과 노동력 부족에 눈길"
미국 사회엔 오래 전부터 로봇의 대대적인 확산이 일자리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내쫓을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자동화 시대의 도래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미 조지아주 소재 '톰슨 플라스틱'에서 일하는 27세 품질검사원 샤케리아 그라이어는 로봇의 도움을 크게 반긴다.
톰슨사는 2020년말 로봇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험한 지형에도 잘 달리게 고안된 소형 오픈카 ATV의 '흙받기'나 잔디 깎는 기계 '덮개'와 같은 플라스틱 부품을 열성형 기계에서 빼내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는 일을 로봇이 담당한다. 과거엔 노동자들이 직접 부품을 빼냈고, 그라이어는 9대의 기계를 돌면서 부품 결함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그는 "로봇 도입 이전엔 기계들을 돌며 부품의 이상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지만 로봇을 들이고 나서 내 일이 매우 쉬워졌다"고 말했다.
미국에 로봇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자동차 또는 항공기 제조사와 같은 대기업뿐 아니다. 중소기업 공장과 창고 소매점 농장, 심지어 건설현장에도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요인은 여러가지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로봇 주문이 치솟았다. 기업들이 노동력 부족과 고임금, 상품 수요 급증 등에 대처하면서다. 미 첨단자동화협회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로봇 주문은 전년 대비 28% 늘었다. 역대 최고치에 다가서며 4만대에 육박했다. 올해도 증가세일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시각화 모빌리티 기계학습 활용도 등에서 로봇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면서 자동화 도입이 극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제조사가 월 단위 또는 연 단위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로봇 제조사들도 중소기업 고객들을 중심으로 구독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톰슨사가 자동화를 받아들이게 된 주요 이유도 구독모델이었다. 89대의 사출성형 기계 중 27대에 로봇장치를 부착했다. 향후 더 많은 기계에 설치할 계획이다.
이 기업 CEO인 스티브 다이어는 "1대당 12만5000달러에 달하는 로봇을 직접 구매할 여력은 안된다"고 말했다. 톰슨 사는 설치된 기계를 시간당으로 계산해 사용료를 낸다. 인간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다이어 CEO는 "로봇 1대당 시간당 10~12달러를 낸다. 과거 노동자를 고용했을 때엔 부가급여를 포함해 시간당 15~18달러를 줬다"고 말했다.
구독모델로 로봇을 공급하는 기업들은 포르믹 테크놀로지와 로벡스, 리오스 등이다. 로봇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해주며 고객에게 정액요금을 청구한다. 대개 시간당 노동자 임금보다 저렴하다. 자동화 제공기업들은 장비 운영 리스크를 떠안지만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자동화 구독 트렌드는 이제 막 시작됐다. 소프트웨어 구독 모델과 비슷한 성장세를 누린다면, 로봇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동화 필요성이 지금처럼 시급했던 적은 없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다시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태평양 너머 구축된 공급망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의 주요 기술과 부품에 대해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게다가 해양물류 비용은 팬데믹 이전 대비 4배 늘었고, 항구에서의 만성적인 물류적체는 1980년 이래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불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연두교서에서 "기업들은 생산과 제조를 다시 미국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조업의 본국 회귀가 실현된다고 해도 이를 담당할 충분한 노동자들이 없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내 1140만개의 일자리가 비었다. 2년 전 대비 470만개 늘었다.
2020년 기준 미국(노동자 1만명당 255대)은 한국(932대)이나 일본(390대) 독일(371대) 등 제조업 강국에 비해 로봇 활용도가 떨어진다. 중국은 산업용 로봇시장에서 단연 최고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에 도입된 모든 로봇의 44%는 중국에서였다. 미국 대비 4배 많았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자동화 채택을 주저하는 이유를 파악한 사만 파리드는 2020년 로봇 구독서비스 제공 기업인 '포르믹 테크놀로지'를 공동창업했다. 로봇 구독서비스를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포르믹은 로봇을 설치하는 데 따른 복잡성과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고객 기업들에게 시간당 최저 8달러를 받는다. 첫 목표는 제품 포장이나 재료 투입 등 가장 단순하고 지루한 일들을 처리하는 로봇 제공이다.
파리드는 "로봇 구독시장의 잠재력은 거대하다. 기술발전으로 로봇이 정교해질수록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표는 100만대 이상의 로봇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정확히 언제 달성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수요는 그만큼 높다. 미국이 전세계 최대 제조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제외하고는 구조적인 이점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로봇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 역시 바뀌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대퇴직'(Great Resignation)이라 불리는 사회현상을 촉발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을 하는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다. 그리고 요즘 젊은 노동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했기 때문에 로봇 자동화 기술에 주눅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하기 싫은 하찮은 일은 로봇이 하는 게 맞다고 여긴다.
26세 로치오 몬타노는 LA 인근 건축기업 '스위너튼'에서 목수로 일한다. 과거엔 2명의 동료와 함께 줄자와 분필선 등을 쥐고 벽과 문, 기타 붙박이 설비를 그리는 기초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젠 소형 모바일 로봇 '더스티'(Dusty)와 함께 일한다. 그는 "작업이 더 빨라지고 정교해졌다"며 "이런 신기술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몬타노는 로봇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줄 훌륭한 도구로 본다.
건설업계엔 속속 로봇이 진입하고 있다. 벽에 회반죽을 바르는 로봇, 콘크리트 천정에 구멍을 뚫어 조명을 달거나 기타 고정장치들을 다는 로봇 등이다. 몬타노는 "로봇을 감독하는 건 언제나 인간일 것"이라고 자신하며 "로봇을 통해 나는 더 많이 배울 기회, 새로운 기술을 익힐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기술 뒤에 숨을 수 없다. 로봇을 직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각화와 기계학습이 개선되면서 로봇은 농업계로도 진출하고 있다. '스타우트 인더스트리얼 테크놀로지'는 2020년부터 잡초 뽑는 로봇을 팔고 있다. 트랙터 뒤에 매달아놓으면 알곡과 가라지를 스스로 구분해 괭이처럼 생긴 날로 피를 베어낸다. 수천장의 사진을 통해 둘의 차이점을 가르친 결과다. 약 25명의 인력이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하는 일을 단 1대의 로봇이 수행한다.
지난해 11월 스타우트에 CEO로 영입된 브렌트 셰드는 "농부들은 노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꾼들이 약속과 달리 일터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잡초 뽑는 로봇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로봇을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서 보자는 움직임은 자율이동로봇 제조사들이 처음 고안했다. 자율이동로봇은 아마존 등의 대형창고 선반에서 지정한 물품을 꺼내 노동자에게 가져다주는 종류의 로봇이다. 이런 종류의 로봇을 제조하는 '그레이오렌지'의 아푸르바 바데라는 "코로나19가 닥쳤을 때 기업들은 짧은 순간에 막대한 양의 전자상거래 주문량을 받았다. 5년 뒤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물량이었다. 때문에 로봇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오렌지는 개별 로봇을 팔기보다 서비스로서 자동화를 판매하기 시작한 기업이다.
자율이동로봇은 전통적인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걸음수를 95% 줄였다. 바데라는 "이는 250명의 노동자가 과거 1000명이 해야 하는 작업을 다룰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고객에게 어필하는 건, 기업의 특정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로봇을 만들어 준다는 게 아니라 우리 플랫폼 내에서 물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유연한 환경설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로봇 구독 서비스 제공 스타트업인 '리오스 인텔리전트 머신'도 제품 포장과 식음료 제품 처리 등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공장 업무에 초점을 맞춘다. 표준 자동화 시스템의 80~90%를 활용한다.
이 기업 CEO 버나드 카세는 "우리는 자체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일본 화낙의 로봇팔, 미국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인텔의 카메라 등을 결합해 자동화 시스템을 만든다"며 "이를 위해 대형 금융기관들과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채택은 기업 인건비를 최대 60% 줄여줄 수 있다. 효율성 제고는 물론 노동자가 아프거나 그만둘 때 생기는 생산 차질 리스크를 제거한다. 카세는 "모든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노동력과 관련한 리스크가 사실상 제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오스의 고객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라마푸드'다. 가족 3대가 경영하는 필리핀 음식점으로, 캘리포니아주 최저임금이 시간당 15달러를 향해 점진적으로 오르면서 5년 이상 자동화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라마푸드는 주저했다. 창업주 가족으로 부사장을 맡고 있는 피제이 퀘사다에 따르면 초기 비용투자와 로봇을 유지보수할 누군가를 고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로봇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퀘사다는 "컨베이어에서 새알심을 가져다 찜기에 올리는 일을 자동화하길 원했다. 하지만 로봇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오스가 설치한 기계는 퀘사다와 동료 직원들을 매료시켰고 결국 '내 친구'(My Pal)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노동자 2명 몫을 척척해내는 로봇은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퀘사다는 "로봇 비용은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보다 저렴하다. 앞으로 주 최저임금이 오르면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반복적인 일은 인간의 사고발생률을 높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수천번 허리를 굽혀 일하는 업무는 이제 로봇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 로봇 A/S'는 이른바 협업로봇의 선구자다. 인간들 사이에서 맡은 임무를 안전하게 처리한다. 유니버설은 로봇팔에 붙이는 장비를 제공하는 300여개 기업과 함께 일한다. 사포질이나 빻는 일, 못질하는 일, 용접하는 일 등을 위한 장비다. 이 기업 CEO 킴 포블센은 "폭발적 혁신으로 로봇이 더욱 다재다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벡스 LLC'는 전통적인 자동화 시스템 통합기업으로 오하이오주 페리스버그에 있다. 주요 사업은 자동화 장비를 고객에게 리스해주는 것인데, 최근 고객 저변을 넓히기 위해 '로벡스 플렉스'라는 별명의 로봇을 구독 서비스로 전환해 제공키로 결정했다. 이 기업 대표 크레이크 프랜시스코는 "로봇 구독 서비스로 진입하지 못하면, 영구적으로 사업 피해를 볼 것이라고 믿는다"며 "향후 수년 내 로봇 구독에서 매출 1/4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도 로봇 구독 모델에 흥미를 갖고 있다. 장비를 구입하거나 리스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