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구인·구직난 공존하는 고용시장
한쪽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 야단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취업할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어처구니 없는 얘기로 들리지만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기술을 기반으로 생활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로 단행된 거리두기가 모두 풀리면서 기존 재래업종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 '테크'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고작 삼성전자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내 IT기업을 상징하는 회사가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가 됐다. 요즘에는 산업 전반에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범위가 더욱 늘어나 당근마켓 토스 야놀자 등이 추가된 '네카라쿠배당토야'까지 확장됐다. 기술기업 증가는 이제 부자 순위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IT업종뿐만 아니라 재래업종도 구인난 양극화
IT기업의 증가는 무척 긍정적이다. 소비자들의 일상이 편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가 창출돼 경제활성화까지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인력 불균형을 발생시켜 구인난과 구직난이 한꺼번에 전개되고 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스타트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려고 혈안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들마저 놀고 있는 아이러니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능 있는 인재를 추천한 직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앞다투어 서울 강남역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재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채용 대상인 IT 개발인력들은 대부분 판교에 거주하고 있어 지하철로 15분 정도 걸리는 강남역 인근까지만 선호하고 강북 등 그 이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판 실리콘밸리'인 테크노밸리가 판교 일대에 조성되자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안랩 한글과컴퓨터 등 상당수 첨단 기업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IT 인력의 중심 거주지가 판교가 됐다.
구인난과 구직난이 심화하는 양극화 현상은 IT업종뿐만 아니라 재래업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근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카페·편의점은 웃는 반면에 강도가 센 식당·술집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울고 있다. 식당과 술집은 거리두기 해제로 손님들이 증가하자 급히 종업원 충원에 나서고 있으나 최저임금에 웃돈을 얹어줘도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코로나 19 이전부터 만성적으로 구인난을 겪어 온 중소제조업체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근로 강도가 낮아 '꿀알바'라 불리는 카페·편의점에는 구직자들이 몰린다.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기성세대와 사뭇 다른 MZ세대의 가치관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원칙과 명확성을 각별히 여기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상사가 아직 일하고 있는데도 칼같이 퇴근한다. '주인의식을 가져라'는 말을 '너를 착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등 이전 세대들이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특히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로 낮은 급여가 많이 거론되지만 이들은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근무환경과 근로조건을 지적한다. 한 여론조사에서 MZ세대 취업준비생의 49.8%가 워라밸이 지켜지는 중소기업이라면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물질적 보상보다 개인적 시간 확보를 추구하는 MZ세대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나 기업 인식도 MZ세대 걸맞게 바뀌어야
기성세대는 MZ세대의 이러한 태도를 '조직원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은 윗세대를 '비합리적'이라고 본다.
어쨌든 이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끌고 나갈 세대다. 머지않아 이들의 인식이 한국의 표준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젠 정부나 기업도 이들의 인식에 걸맞게 변해야 한다. 산업재편에 따라 대학 교육과정도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개발 중심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가 차원의 기술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전문성을 갖춘 양질의 인재를 찾는 기업과 취업이 급한 구직자 간의 거리가 좁혀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