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국회의원은 제 선거법 못 바꾼다

2023-04-28 10:58:07 게재
김상준 경희대 교수, '붕새의 날개·문명의 진로' 저자

유구한 속담도 시대에 따라 살짝 달라져야 제맛이지 않을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도 그렇다. 오늘날은 면도기가 좋아져서 스님도 제 머리 깎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 속담은 '국회의원은 제 선거법 못 바꾼다'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국회에서 진행 중인 선거법 개정 논의를 보고 든 생각이다. 현행 선거법 개정에 대해 말만 무성했지 지난 3년간 국회의원들이 실제 바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치개혁위도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도 다 실없이 끝났다. 차기 선거 13개월 전까지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24조 11항도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국회 선거법 개혁의 역사가 왜 없었겠는가. 특히 1987년 이후 선거법은 분명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1987년 민주화의 거대한 힘이 컸다. 특히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절 집권당이 2/3 또는 절반씩 그냥 가져가던 '전국구'를 점차 '비례대표성'으로 전환해 온 것에 주목한다. 그러다 정당명부식 1인2표제가 도입된 2004년 총선은 중요한 도약이었다. 2016년 독선에 빠진 박근혜 정부를 흔들었던 국민의당 돌풍도 1인2표제로 가능했다.

위성정당으로 왜곡된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 개혁이란 표의 등가성 대표성 비례성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말한다. 정당비례의석을 확대하고 정당득표율을 한정된 비례의석만이 아닌 전체의석에 반영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그러한 원칙과 방향에 부합한다. 이럴 때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일치도가 높아진다. 여러 나라의 실제 경험에서 합치하는 바다. 촛불혁명 기간 그런 요구가 컸고,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정부에 거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국회 안의 그 개혁 에너지는 목표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누가 봐도 이상했던 것은 2019년 말 민주당과 군소야당이 합의했던 '준연동제 비례대표제' 선거법이었다. 취지는 소수정당에게 더 많은 의석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라고 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소수정당의 의석이 훨씬 줄었고, 두 거대양당의 의석 점유율은 훨씬 높아졌다. 등가성 대표성 비례성 모두 후퇴했다.

2020년 4.15 총선의 최대수혜자는 뜻밖에 더불어민주당이었다. 2019년 줄곧 헤매던 민주당에게 2020년 연초에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정국'은 천운이었다. 재난에 처한 국민의 위기의식과 K방역에 대한 넓은 지지가 화학작용을 해 특히 서울, 경기권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지역구 전체의 지지율 차이는 8.5%였으나 (더불어민주당 49.91%, 미래통합당 41.45%), 지역구 전체 의석수에서는 민주당 163석, 통합당 84석으로 더블스코어가 되었다. 비례의석에서는 더불어시민당이 17석, 미래한국당은 19석을 거두어갔다.

거대 양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91.36%와 비례투표에서 얻은 67.19%를 합산해 나누면 79.27%가 된다. 그러나 전체 의석에서는 300석 중 양당이 286석으로 95.33%를 점하게 되어, 거대양당의 과잉 대표성은 더욱 심화되고 말았다.

합의된 선거법의 허점을 악용한 비례대표 '위성정당' 때문이었다. 비례대표 위성정당 안은 원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일찍부터 대놓고 선포했던 꼼수였다. 편법이라고 비난만 해봐야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다. 민주당도 '선거연합정당'이라는 허울을 내걸었지만 결국 똑같은 위성정당을 만들고 말았다.

비례의석수 충분히 할당돼야 유의미

위성정당은 큰 문제다. '위성정당'이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수도 없는 선거법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연동비례제란 전체 의석에서 정당득표율만큼의 의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연동비례제가 본래 취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비례의석수가 충분히 할당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성정당이 나오지 않는다.

쉽게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1:1인 경우와 9:1인 경우를 비교해보자. 계산 편의상 의원수는 100명으로 하고, 먼저 비례의석수가 충분히 할당된 1:1의 경우부터 보자. 거대정당인 A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둬 지역구 의석 50석의 절반인 25석을 획득했다고 하자. 그리고 A당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40%였다. 따라서 전체의석의 40%인 40석이 A당에 할당되고 여기서 지역구 당선 25석을 뺀 15석을 비례의석으로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이렇듯 비례대표율이 높은 선거제도에서는 위성정당이라는 발상이 나오기 어렵다. 모든 정당에 득표율에 따라 정의롭고 합당한 보상을 준다. A당처럼 지역구에서 과반을 석권하고서도 비례대표에서 상당수의 의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제도가 그렇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9:1, 즉 지역구 90석, 비례의석 10석으로 비례대표율이 매우 낮은 경우는 어떻게 될까. A당은 마찬가지로 지역구에서 선전하여 지역구 의석 90석의 절반인 45석을 석권하고, 정당득표에서도 마찬가지로 40%를 득표했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A당은 비례의석에서 더 이상 확보할 의석이 없다. 정당득표 40%가 보장하는 의석 40석을 이미 초과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에서는 거대정당일수록 비례대표 몫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특히 지역구에서 큰 승리가 예상되는 정당일수록 그렇다.

2020년 한국 총선 '준연동제' 비율이 정확히 9:1이었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의 10%인 30석에 연동제를 걸었다. 다만 연동율을 깎아 50%로 했다. 여기에다 병립형 비례제로 남겨둔 17석을 합하면 전체의석의 15%다. 이렇게 하여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셈하기도 어려운 해괴한 선거법이 탄생했다. 그 합의를 거부한 통합당은 '위성정당' 출범을 선포했다. 지역구 출마 없이 비례의석만을 노리는 위성정당 득표로 추가의석을 더하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연말 '4+1' 준연동제 합의 당시에 2020년 4.15 총선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다. 아마 민주당은 고전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고, 통합당은 내심 대승을 고대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낙승은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 역시 애초 위성정당 카드를 준비하는 '두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국면을 크게 바꿨다. K방역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어, 시종 편법이라 비난해온 '위성정당' 카드를 자신도 꺼내게 되었다. '위성정당'으로 민주당이 추가 의석을 다수 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역 대 비례 9:1 조건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정당일수록 비례전용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편법의 유혹이 커지기 마련이다.

위성정당 금지만이라도 합의 이루길

연동비례제 선거제도에서 거대정당의 비례전용 위성정당 창당은 편법 정도가 아니라 분명 위헌적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괴한 사태였다. 그럼에도 한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관련 소송에서 그 위법성과 위헌성에 대해 분명한 적시 판결을 내지 못한 것은, 양대 거대정당이 모두 위헌적 위성정당 창당에 가담해 위헌 판단의 폭을 크게 제한해 버렸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초반부터 선거법 개정이 운위되었지만 지난 3년 간 아무 것도 나온 것이 없다. 국회의장은 다시 한번 기한을 늦추어 5월 중순까지는 단일안을 도출해 본회의 표결에 부치겠다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싶다. 그 기간 동안 최소한 위성정당 금지에 관해서만이라도 확고한 여야 합의를 이루기 바란다. 전면적 선거법 개정은 이번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9년과 같이 국민이 이해할 수 없었던 개정은 없는 편이 낫다. 국민의 지혜를 모으는 획기적 방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