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마약, 남의 문제가 아니다

2023-07-12 11:34:30 게재

지난달 19일 오전 5시 30분께 필리핀 세부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 안에서 소동이 났다. 한 청년이 비상문을 열려고 시도한 것이다. 18살의 이 승객은 마약중독을 의심받고 있다.

지난 10일 검찰이 마약조직 17명(14명 구속)을 기소했다. 단일 마약 밀수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였는데 놀라운 것은 전체 피의자 중 14명이 20대였고, 나머지 3명은 30대였다. 마약조직의 총책은 29살에 불과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시가 6억5000만원 상당의 케타민 10㎏를 밀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케타민은 동물용 마취제의 일종으로 젊은층 사이에 '클럽마약'으로 불리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이들이 밀수한 케타민 10㎏은 한번에 2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소매가로 따지면 25억원에 이른다.

MZ세대 마약 확산 심각

이제 마약은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2세들의 지나가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지만 이젠 마약의 '최종 소비지'가 될 만큼 곳곳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청소년층까지 파고들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특히 30대 이하 젊은층 마약류사범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부장 박재억 검사장)가 5일 발간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사범은 1만839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검이 1990년부터 매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발간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4년 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45.8%나 증가했다.

그중에도 젊은층 마약류사범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적발된 30대 이하 마약류사범은 1만988명으로 2018년 5257명에 비해 109%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체 마약류사범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41.7%에서 지난해 59.8%로 커졌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마약류 사범도 지난해 같은 기간 3033명 대비 21% 증가했다. 검거 인원 중 20대가 30.9%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가 21.8%로, 2030세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아메리카 드림' 미국을 보면 미래가 암울하다. 이른바 '좀비거리'로 알려진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에선 평균 8000~1만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약에 취해 배회한다고 한다. 2021년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미국인이 7만1000명이라고 한다. 미국은 12세 이상 국민의 8.7%가 한번 이상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이다.

미국은 닉슨 대통령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다. 특히 1980년대 초 레이건행정부는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을 펼쳤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오히려 전과자만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 또는 어떤 외부의 침공이 아니라 마약과 총기로 인해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식량과 무기 없는 '마약과의 전쟁'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검찰청에 마약조직범죄부를 새로 신설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공조체제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법무부(검찰)와 경찰 마약수사에 배정된 예산은 각각 40억~30억원에 불과하다. 최근 시민단체가 공개한 29개월 간 집행된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특활비 292억원에도 훨씬 못미친다.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예방과 재활치료에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교육계 등에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럼에도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 24곳 중 13곳은 최소 시설 및 인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혈청분석기도 없고 전문의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사업 예산은 지난해와 동일한 4억1000만원이다. 1명의 마약류 중독자를 치료하는 데에 보통 600만~700만원이 든다고 한다. 4억이면 60~70명을 치료할 수 있다. 국내 마약류 중독자 50만명의 1%도 치료하지 못하는 금액이다. 군인과 식량, 무기도 없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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