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판정부가 관할 요건 잘못 해석"

2023-07-18 11:31:40 게재

정부 '엘리엇 판정' 불복절차 개시

소송 전망 불투명, 비용만 증가 우려도

정부가 엘리엇 판정에 대한 불복 절차에 나선 것은 정당한 취소 사유가 존재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정부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중재판정부가 한미FTA상 관할 요건을 잘못 해석해 이 사건에서 관할을 인정하였고 이는 영국 중재법상 정당한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18일 밝혔다.

한미 FTA상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의 관할이 인정되기 위해선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일 것 △투자자의 투자와의 관련성이 있을 것 △그 조치의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이번 사건 판정은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내려졌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우선 삼성물산의 여러 소수 주주의 하나인 국민연금이 합병에 대한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다른 소수 주주인 엘리엇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의결권 행사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단했지만 한미 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은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봤다.

대한민국 법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 남용 등 위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도 제시했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에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ISDS를 제기했다. 이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20일 엘리엇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와 법률비용 2890만3188달러(약 372억5000만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2015년 7월 16일부터 5%의 연복리를 적용한 이자까지 포함하면 엘리엇에게 물어줘야 할 금액은 1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중재 판정은 관할 위반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또 이번 판정을 바로 잡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 및 공적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ISDS 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진행 중인 관련 ISDS 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불복에 나선 배경으로 들었다.

실제 미국계 헤지펀드인 메이슨 펀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2억 달러 규모의 투자자-국가간 소송을 제기해 중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취소 소송을 통해 중재판정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정부가 제기하는 관할 위반 문제는 이미 엘리엇 중재판정에서 배척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엘리엇과의 ISDS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순수한 상업적 행위에 불과하므로 이를 곧 국가의 '조치'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중재판정부는 복지부 관계자 등이 국민연금의 합병표결에 개입한 행위는 협정상 국가 책임의 근거가 되는 '조치'에 해당된다고 봤다. 또 국민연금은 사실상 국기기관이므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행위는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고 보고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9년에도 국제중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이란 다야니 가문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을 위반했다며 제기한 국제중재에서 중재판정부가 다야니 측에 73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리자 취소 소송을 제기했었다. 당시에도 우리 정부는 관할 위반 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취소 소송으로 인해 지연이자와 법률 비용 등 우리 정부의 손실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에서는 국민 세금이 걸린 문제인 만큼 판정문 공개 등을 통해 엘리엇 판정에 대한 대응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통상 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중재판정부가 어떤 법리와 논리로 우리 정부의 관할 위반 주장을 배척했는지 알아야 취소 소송의 실익을 따져볼 수 있을 텐데 법무부가 판정문을 공개하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며 "판정문 공개 없이 정부가 취소 소송 방침을 정하고 국민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취소 소송과 구상권 청구 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가능하도록 판정문을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문 및 영문으로 작성된 판정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라며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판정의 취소 소송 진행 경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신속히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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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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