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생 ‘숫자 신뢰’가 관건
신규자금 논란에 회계 적정성 변수 … 메리츠·산은·법원 판단 시험대
홈플러스 회생 논의의 초점이 찬반 여부에서 회생계획을 떠받치는 숫자의 신뢰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승인도 반대도 하지 않은 채 판단을 유보한 가운데, 회생절차상 신규자금 부담에 더해 회계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과 검찰 수사까지 겹치며 회생 논의는 신중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개입 여부와 서울회생법원의 판단이 향후 회생 절차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최근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법원이 요청한 회생계획안 의견 수렴 결과,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 자체에 대해 명확한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채권단과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들과 회생계획의 세부 조건을 논의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다만 자금 조달 방식과 자산 매각 일정, 채무 변제 구조 등 핵심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협의는 법원의 판단 이후에야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회생의 전제, ‘숫자’에 대한 신뢰 = 회생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배경에는 신규자금 구조 외에도 추가 검증 변수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금 조달과 손실 분담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회계 처리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며 회생계획의 전제가 다시 검증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회생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자산 가치와 손실 규모 등 재무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이 수치의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채권자들은 회생이 청산보다 나은 선택인지 다시 따질 수밖에 없다. 특히 회생 절차에서 중요한 청산가치 보장 원칙과 신규자금 담보 안정성 역시 재무 수치와 직결된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의 판단 유보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메리츠는 회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규자금 투입이 기존 채권자에게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신중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자금의 투입 시점과 담보 설정 방식에 따라 기존 담보권의 회수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주요 고려 요소다.
◆산은·법원 판단이 회생절차 분기점 = 채권자협의회 역시 지난달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회생계획안의 수행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시적 반대는 아니지만, 법원이 수정명령권을 통해 계획안의 현실성과 채권자 보호 원칙을 점검해 달라는 취지다.
의견서에는 3000억원 규모 신규자금의 금리와 담보, 담보 순위, 점포 매각 과정에서의 선순위 채권자 권리 보장, 익스프레스 사업부 분리매각이 회생계획에 미치는 영향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구조만으로는 책임 있는 동의에 나서기 어렵다는 판단을 전달한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홈플러스의 ‘본격 논의’ 선언과 채권자들의 신중론이 회생 절차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적 협의에 그칠 경우 논의는 장기화될 수 있지만, 법원의 판단을 계기로 신규자금 조건과 손실 분담 구조가 구체화되면 주요 채권자들의 판단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의 역할도 같은 기준에서 주목된다. 최대 민간 채권자가 승인에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산은이 먼저 신규자금에 참여할 경우, 공적 자금이 민간 위험을 떠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산은으로서는 대주주의 책임 이행 여부와 회생계획의 객관성, 그리고 숫자의 신뢰성이 핵심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 회생 판단의 추가 변수 = 여기에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도 회생 논의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은 경영 판단과 회계 처리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며, 회생계획의 기초가 되는 재무 수치와 책임 구조에 대한 추가 검증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형사 절차 자체가 회생을 중단시키는 사안은 아니지만, 구속영장 청구나 수사 결과에 따라 대주주의 책임 이행 가능성과 회생계획의 신뢰성에 대한 채권자와 법원의 판단 기준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검찰 변수 역시 메리츠의 승인 유보와 산은의 개입 신중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현장 불안 속 논란 지속 = 회생 논의가 길어지면서 현장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구조조정과 점포 매각, 사업부 분리매각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되자 노조는 고용 안정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입점업체들 역시 대금 정산과 계약 유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호소하고 있다.
MBK측은 홈플러스의 사업 리스크가 과도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유통 환경 변화와 소비 위축 등 외부 요인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을 뿐, 자산 가치나 사업 지속성이 회생 전제를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회계 처리 논란 역시 법적·회계적 판단을 통해 정리될 사안이라는 인식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결국 홈플러스 회생의 핵심은 회생 여부 자체보다 어떤 숫자를 전제로 회생을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그 숫자를 이해관계자들이 어느 수준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법원의 판단과 채권자들의 선택이 맞물리며 회생 논의의 방향도 점차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