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K-콘텐츠 시대에 던지는 근본적 질문

2026-01-13 13:00:01 게재

K-콘텐츠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투자 확대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뜨겁다. K-팝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을 넘어 캐릭터와 세계관까지 K-콘텐츠는 글로벌 문화소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K-콘텐츠 전략 지원, 정책금융 확대, 스토리 중심의 슈퍼 지식재산(IP) 확보 등 다양한 산업전략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며, 이를 보호하는 저작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해 일정 기간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 기원은 18세기 영국의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출판업자의 권리가 아닌 창작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최초의 근대적 저작권 제도였다. 이후 저작권은 단순한 복제 방지 장치를 넘어, 문화와 지식의 창작을 장려하고 사회적 가치를 축적하는 핵심 제도로 발전해왔다. 저작권은 곧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해 사회가 부여하는 제도적 존중이자, 창작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이다.

저작권 본질 고려한 기업전략과 국가정책을 수립할 때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콘텐츠의 생산 속도와 양을 비약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미지와 음악, 텍스트가 손쉽게 생성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콘텐츠의 본질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사유와 감정, 그리고 시간에 걸쳐 축적된 고뇌에 있다. 위대한 예술작품이 세대를 넘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한국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 집단적 경험과 정서를 서사로 풀어내며 글로벌 대중과 공명해왔다. K-드라마와 K-팝이 특정 국가나 세대를 넘어 소비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가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창출하는 수익만큼, 국내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과 지속 가능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 역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중요성은 문화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산업에서 콘텐츠는 기술과 제품, 서비스에 결합되며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낸다. 저작권은 저자 사후 70년이라는 장기보호 기간을 전제로 하는 대표적인 무형자산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 또한 장기적 수익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도 제품과 서비스의 수명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현실에서, 콘텐츠는 기업에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와 안정적인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핵심자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K-콘텐츠는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한국 산업구조의 한계를 넘어, 무형자산 중심의 선진적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콘텐츠 산업 자체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산업 영역에서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결합하고 권리화해 수익구조를 설계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콘텐츠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 통합적 IP 연결 전략, 스토리와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확장 전략, 다양한 라이선스를 통한 수익화 전략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과 사례를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 공공 비즈니스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내 콘텐츠 창작자에 대한 대우와 보상은 K-콘텐츠의 위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나 스토리가 대중화돼 기업의 제품이나 홍보에 활용되면서도 저가의 일회성 보상에 그치는 사례는 빈번하다. 이는 일부 계약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가치를 전략자산이 아닌 부수적 요소로 인식해 온 산업구조와 전략부재의 한계다.

콘텐츠와 저작권을 미래 산업 핵심 인프라로 인식해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책은 창작자 보호를 중심으로 저작권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확산을 뒷받침해야 하며, 교육 역시 창작·권리·산업전략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관련 담당자 모두가 콘텐츠와 저작권을 ‘비용’이나 ‘규제’가 아닌 미래산업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K-콘텐츠 시대는 이미 열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저작권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전략과 국가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K-콘텐츠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한국 경제와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고영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AI첨단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