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택임대를 위한 최소 품질기준이 필요하다

2023-09-12 11:08:34 게재
윤성진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부연구위원

건축법을 위반한 건축물을 위반건축물이라고 한다. 근린생활시설 창고를 주거용으로 무단 용도변경하고, 베란다나 옥상을 불법적으로 증축하며, 세대수를 늘리기 위해 방을 쪼개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위반건축물은 원룸·다가구·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를 임대하는 경우 소음·단열·환기·채광 등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화재에 취약하며, 전세대출이 제한되거나 보증금 보호가 어려워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위반건축물을 임대하는 행위는 불법일까? 놀랍게도 불법이 아니다. 현행 제도상 주택임대를 위해 요구되는 물리적 상태나 법률준수 의무 등에 관한 규정이 없다. 안전·기능·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법에서 위반으로 규정한 건물을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 임대하는데 제한이 없다.

이에 비해 식품의 경우 '식품위생법'에서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판매·영업 시 지켜야 할 기준과 규격을 제시하고, 위해식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일반 제품의 경우에도 '제품안전기본법'에서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치거나 끼칠 우려가 있는 제품의 제조·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주거의 경우에도 '주거기본법'에 따른 최저주거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주거복지정책이나 건설인허가에 활용될 뿐 기준 미달 주택의 임대를 막지 못한다. 또한 주택임대차를 규율하는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주택 품질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

외국은 거주 부적합한 주택 임대 금지

그러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대부분 국가에서 주택임대를 위한 최소 품질기준이 존재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통일주택임대차법(Uniform Residential Landlord and Tenants Act)'에 따라 '건강과 안전에 관한 건축 법규 준수' 의무와 수선 유지 의무, 전기·냉난방·온수·폐기물처리 등 기본설비 제공 의무 등을 임대인 의무로 규정한다. 프랑스도 민법에서 임대인의 '온당한 주거지' 제공 의무를 규정하고 '온당한 주거 기준에 관한 법률(Loi relative au logement decent)'에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구조 침수 외기차단 안전장치 전기 가스 난방 온수 환기 채광 해충 등에 있어 세입자의 물리적 안전이나 건강상의 위험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된다.

최근 개정된 영국의 'Homes (Fitness for Human Habitation) Act 2018', 아일랜드의 'Housing (Standards for Rented Houses) Regulations 2019' 등에서도 주택임대를 위한 최소 품질 기준과 조치 규정을 강화했다.

우리나라는 양질의 주택건설을 통해 주거수준 향상을 이루어왔다. 주택공급과정에서 건축규제를 통해 거주적합성을 규율해온 것이다. 하지만 여러 건축규제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임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거주에 부적합한 주택이 양산되고 있으며, 이는 세입자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주거수준 향상, 임대과정을 주목하자

'주거기본법'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 보장을 위해 임대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주택임대를 위한 최소 품질 기준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