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예산안, 이것이 문제다 | ④ 해외 원조 급증
2년간 66% 늘린 '저개발국 지원' … '집행 미흡'에도 '증액'
차관 지원 신규사업 중 13개 타당성조사 미완료·미실시
내년 차관 지원 중남미 159%, 중동 141% 등 대폭 늘려
예결위 "국내 R&D예산 대폭 감소 등 어려운 재정 고려해야"
우리나라의 내년에 시작할 차관을 빌려주는 사업 중 13개는 타당성조사 대상인데도 아직 타당성조사를 끝내지 않았거나 실시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가 결과 '미흡'으로 나왔고 매년 집행률이 크게 떨어져 배정된 예산액이 불용 처리되고 있는데도 내년 예산에서는 '증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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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2024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도국에게 차관을 지원해주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과 관련해 "2024년 신규 내역사업 중 타당성조사 대상인 사업 23개 중 타당성조사를 완료하지 않거나 미실시한 사업이 13개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CIS(독립국가연합), 중남미 등 4개 지역에 차관을 지원하는 '대개도국 차관사업'이 연례적으로 집행실적이 저조해 예산을 수정, 감축해 왔는데 내년에는 60% 이상 늘었다는 점도 점검대상에 올랐다. 중남미는 158.9% 늘었고 중동-CIS는 141.0% 증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도 각각 61.9%, 61.2% 확대됐다. 이 4개 사업에서 늘어난 예산 규모만 5745억5300만원이다.
◆올해 계획된 타당성 조사 부진, 내년 집행실적 저조 이어질 수도 = 올해 집행실적 부진은 내년의 증액이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올해 계획된 차관사업의 타당성조사 건수가 27건이었지만 9월말 기준 타당성조사 접수건수는 16건에 그쳤다. 이중 12건은 입찰공고가 진행 중이며 2건은 평가수행업체를 선정하는 데 그쳤다. 타당성 조사가 통상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용과 이월로 내년 집행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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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도국 차관'사업은 개도국의 산업발전과 경제안정을 위해 장기저리의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신시장 진출과 고부가 사업 수주를 지원하려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은 전년대비 35.2%인 5290억300만원 늘어난 2조319억7900만원을 편성했다.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의 국제사회 기여를 확대하고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2024년에 집행계획이 확정된 사업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집행부진 사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김혜진 예산결산조사관은 "기존 집행여건을 고려해 감액 조정된 내역사업들 중 상당수가 내년 예산안에서 증액됐다"며 "ODA사업은 국내상황 뿐 아니라 (지원을 받는) 수원국의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으므로 집행여건의 변동성이 크다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집행 부진 차관사업 컨설팅, 하지만 증액 = '대개도국차관 사업'의 발굴·개발, 사전타당성 평가 등 사업 준비 단계부터 사업실시, 사후관리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진행 컨설팅 사업'은 연례적으로 대규모 미집행이 발생했지만 증액됐다. 이 사업의 집행실적은 2020년 48.0%에서 2021년 31.3%, 2022년 42.5%, 2023년 9월 말 기준 28.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재정사업 자율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았다. 지출 구조조정 차원에서 8.8%인 22억2000만원의 예산이 줄었다. 하지만 이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신사업이 대거 포함되면서 올해보다 20.1%인 50억5500만원이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 대개도국차관 사업 등 ODA 규모를 확대하고 전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후보사업의 발굴 및 선점, 승인 준비를 위한 타당성조사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며 "올 4분기 계약일정 등을 감안할 때 2023년도 집행률도 전년 대비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김 조사관은 "기획재정부는 재정사업 자율평가 등 각종 재정사업 평가제도를 총괄하는 부처로서,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 및 자체적으로 수립한 지출구조조정계획과 상반되게 계획액을 편성하는 것은 재정사업 평가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평가제도의 실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쟁 및 취약국에 대한 무상 ODA 사업'은 절차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이 취지에 맞지 않게 '슬로우트랙'으로 운영되고 있어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사업의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266.3%인 896억7600만원 늘어난 1233억5200만원이다. 하지만 과거 집행실적은 매우 저조했다. '동티모르 진실화해센터 디지털화를 통한 평화인식증진사업' 등 2021년 신규사업 3건의 현재까지 누적집행액이 약정금 143억 500만원의 24.9%에 불과했다. 올해 예산에 편성돼 추진중인 15건의 계속사업 중 7건의 사업추진이 지연돼 실집행이 매우 저조하다. '솔로몬제도 재난 및 기후변화 회복력 강화 사업' 등 지난해 국제기구로 들어간 신규사업 4건의 누적집행액이 국제기구 지급 약정금의 10.7%인 4억5600만원에 그쳤다. 이중 3건은 올해 예산마저 집행되지 못한 채 국제협력단에서 장기 보유중이다.
올해 신규사업으로 확정된 20건 중 17건은 9월말까지 연차별 소요액도 확정되지 않아 국제기구와 약정체결도 못했다. 연내 약정체결이 되더라도 국제기구에 100% 지급될 수는 있지만 사업은 결국 내년에 실행돼 회계연도와 사업주기가 불일치하게 된다.
외교부는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의 기민하고 유연한 대응과 지원을 지속 요구함에 따라 2024년도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 예산안을 크게 증액하였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전년도 연말 수요조사 이후 국제기구와의 약정 체결 및 약정금 지급까지 1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약정 체결 이후로도 상당한 비율로 사업추진이 지연돼 국제기구 단계의 실집행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시행절차를 간소화해 국제사회의 요구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별 협력사업, 국제기구 협력사업 등 2년 주기에 따른 사업과 추진 속도 면에서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계획 없는 신규사업도 증액 =
구체적인 사업시행계획이 없는 신규사업에 대한 과도한 증액도 지적대상에 올랐다. 내년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 예산안'의 지역별 세부 산출내역을 살펴보면, 계속사업 33건에 517억 6800만원, 사업시행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신규사업 32건에 715억 8400억원이 배정됐다. 올해 예산 대비 증액된 896억 7600만원의 79.8%가 신규사업을 위한 예산이다. 김 조사관은 "분쟁·자연재해 등 대규모 해외재난 발생시 신속한 재난구호 실시를 위한 재난대응 예산이 올해 본예산 대비 149%, 약 1500억원이 증액된 3046억원 편성돼 이를 통해 분쟁 및 취약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급한 원조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일정 부분 가능할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분쟁 및 취약국 지원 사업의 신규사업 물량을 크게 늘려야 할 시급성 및 필요성이 있는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도상국에게 개발경험을 전수하는 '양자 정책자문사업'의 대규모 증액도 도마위에 올라갔다. 보고서는 "(개도국 정책자문) 긴급요청사업은 사업계획이 구체화되지 않고 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은 채 편성돼 국회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사업내용을 검토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2024년에 사업수가 대폭 증가해 (긴급요청사업 형식의) 양자 정책자문사업의 전체 신규사업 44개 중 약 3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시 20대 핵심과제의 하나로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로 국익 창출'을 제시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6조 5317억원의 ODA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올해보다 36.7%를 늘린 규모다. 올해도 전년대비 21.3% 늘린 것을 고려하면 2년 연속 ODA 예산 규모를 65.9%나 확대시킨 셈이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총 ODA 규모를 2019년 대비 2배 이상 수준으로 확대 추진하겠다는 기존 ODA 예산 확대 목표가 6년 앞당겨 내년에 조기 달성될 전망이다. 김 조사관은 "세수 부족 등으로 미래투자를 위한 국내 R&D 예산을 대폭 감소하는 등 어려운 재정 여건, 미국의 긴축 장기화와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 등에 따라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점 및 ODA 사업 예산이 한번 증가하면 예전보다 축소되기 어려운 비가역적 성질을 지니는 점 등을 고려하면 ODA 예산 확대 속도의 적정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주요 사업 위주로 재원배분의 합리성과 집행가능성 등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