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예산안, 이것이 문제다 | ④ 해외 원조 급증

2년간 66% 늘린 '저개발국 지원' … '집행 미흡'에도 '증액'

2023-11-06 16:05:07 게재

차관 지원 신규사업 중 13개 타당성조사 미완료·미실시

내년 차관 지원 중남미 159%, 중동 141% 등 대폭 늘려

예결위 "국내 R&D예산 대폭 감소 등 어려운 재정 고려해야"

우리나라의 내년에 시작할 차관을 빌려주는 사업 중 13개는 타당성조사 대상인데도 아직 타당성조사를 끝내지 않았거나 실시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가 결과 '미흡'으로 나왔고 매년 집행률이 크게 떨어져 배정된 예산액이 불용 처리되고 있는데도 내년 예산에서는 '증액'시켰다.


6일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2024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도국에게 차관을 지원해주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과 관련해 "2024년 신규 내역사업 중 타당성조사 대상인 사업 23개 중 타당성조사를 완료하지 않거나 미실시한 사업이 13개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CIS(독립국가연합), 중남미 등 4개 지역에 차관을 지원하는 '대개도국 차관사업'이 연례적으로 집행실적이 저조해 예산을 수정, 감축해 왔는데 내년에는 60% 이상 늘었다는 점도 점검대상에 올랐다. 중남미는 158.9% 늘었고 중동-CIS는 141.0% 증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도 각각 61.9%, 61.2% 확대됐다. 이 4개 사업에서 늘어난 예산 규모만 5745억5300만원이다.

◆올해 계획된 타당성 조사 부진, 내년 집행실적 저조 이어질 수도 = 올해 집행실적 부진은 내년의 증액이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올해 계획된 차관사업의 타당성조사 건수가 27건이었지만 9월말 기준 타당성조사 접수건수는 16건에 그쳤다. 이중 12건은 입찰공고가 진행 중이며 2건은 평가수행업체를 선정하는 데 그쳤다. 타당성 조사가 통상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용과 이월로 내년 집행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안설명 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대개도국 차관'사업은 개도국의 산업발전과 경제안정을 위해 장기저리의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신시장 진출과 고부가 사업 수주를 지원하려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은 전년대비 35.2%인 5290억300만원 늘어난 2조319억7900만원을 편성했다.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의 국제사회 기여를 확대하고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2024년에 집행계획이 확정된 사업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집행부진 사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김혜진 예산결산조사관은 "기존 집행여건을 고려해 감액 조정된 내역사업들 중 상당수가 내년 예산안에서 증액됐다"며 "ODA사업은 국내상황 뿐 아니라 (지원을 받는) 수원국의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으므로 집행여건의 변동성이 크다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집행 부진 차관사업 컨설팅, 하지만 증액 = '대개도국차관 사업'의 발굴·개발, 사전타당성 평가 등 사업 준비 단계부터 사업실시, 사후관리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진행 컨설팅 사업'은 연례적으로 대규모 미집행이 발생했지만 증액됐다. 이 사업의 집행실적은 2020년 48.0%에서 2021년 31.3%, 2022년 42.5%, 2023년 9월 말 기준 28.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재정사업 자율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았다. 지출 구조조정 차원에서 8.8%인 22억2000만원의 예산이 줄었다. 하지만 이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신사업이 대거 포함되면서 올해보다 20.1%인 50억5500만원이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 대개도국차관 사업 등 ODA 규모를 확대하고 전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후보사업의 발굴 및 선점, 승인 준비를 위한 타당성조사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며 "올 4분기 계약일정 등을 감안할 때 2023년도 집행률도 전년 대비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김 조사관은 "기획재정부는 재정사업 자율평가 등 각종 재정사업 평가제도를 총괄하는 부처로서,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 및 자체적으로 수립한 지출구조조정계획과 상반되게 계획액을 편성하는 것은 재정사업 평가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평가제도의 실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쟁 및 취약국에 대한 무상 ODA 사업'은 절차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이 취지에 맞지 않게 '슬로우트랙'으로 운영되고 있어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사업의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266.3%인 896억7600만원 늘어난 1233억5200만원이다. 하지만 과거 집행실적은 매우 저조했다. '동티모르 진실화해센터 디지털화를 통한 평화인식증진사업' 등 2021년 신규사업 3건의 현재까지 누적집행액이 약정금 143억 500만원의 24.9%에 불과했다. 올해 예산에 편성돼 추진중인 15건의 계속사업 중 7건의 사업추진이 지연돼 실집행이 매우 저조하다. '솔로몬제도 재난 및 기후변화 회복력 강화 사업' 등 지난해 국제기구로 들어간 신규사업 4건의 누적집행액이 국제기구 지급 약정금의 10.7%인 4억5600만원에 그쳤다. 이중 3건은 올해 예산마저 집행되지 못한 채 국제협력단에서 장기 보유중이다.

올해 신규사업으로 확정된 20건 중 17건은 9월말까지 연차별 소요액도 확정되지 않아 국제기구와 약정체결도 못했다. 연내 약정체결이 되더라도 국제기구에 100% 지급될 수는 있지만 사업은 결국 내년에 실행돼 회계연도와 사업주기가 불일치하게 된다.

외교부는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의 기민하고 유연한 대응과 지원을 지속 요구함에 따라 2024년도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 예산안을 크게 증액하였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전년도 연말 수요조사 이후 국제기구와의 약정 체결 및 약정금 지급까지 1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약정 체결 이후로도 상당한 비율로 사업추진이 지연돼 국제기구 단계의 실집행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시행절차를 간소화해 국제사회의 요구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별 협력사업, 국제기구 협력사업 등 2년 주기에 따른 사업과 추진 속도 면에서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계획 없는 신규사업도 증액 =

구체적인 사업시행계획이 없는 신규사업에 대한 과도한 증액도 지적대상에 올랐다. 내년 '분쟁 및 취약국지원 사업 예산안'의 지역별 세부 산출내역을 살펴보면, 계속사업 33건에 517억 6800만원, 사업시행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신규사업 32건에 715억 8400억원이 배정됐다. 올해 예산 대비 증액된 896억 7600만원의 79.8%가 신규사업을 위한 예산이다. 김 조사관은 "분쟁·자연재해 등 대규모 해외재난 발생시 신속한 재난구호 실시를 위한 재난대응 예산이 올해 본예산 대비 149%, 약 1500억원이 증액된 3046억원 편성돼 이를 통해 분쟁 및 취약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급한 원조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일정 부분 가능할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분쟁 및 취약국 지원 사업의 신규사업 물량을 크게 늘려야 할 시급성 및 필요성이 있는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도상국에게 개발경험을 전수하는 '양자 정책자문사업'의 대규모 증액도 도마위에 올라갔다. 보고서는 "(개도국 정책자문) 긴급요청사업은 사업계획이 구체화되지 않고 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은 채 편성돼 국회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사업내용을 검토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2024년에 사업수가 대폭 증가해 (긴급요청사업 형식의) 양자 정책자문사업의 전체 신규사업 44개 중 약 3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시 20대 핵심과제의 하나로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로 국익 창출'을 제시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6조 5317억원의 ODA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올해보다 36.7%를 늘린 규모다. 올해도 전년대비 21.3% 늘린 것을 고려하면 2년 연속 ODA 예산 규모를 65.9%나 확대시킨 셈이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총 ODA 규모를 2019년 대비 2배 이상 수준으로 확대 추진하겠다는 기존 ODA 예산 확대 목표가 6년 앞당겨 내년에 조기 달성될 전망이다. 김 조사관은 "세수 부족 등으로 미래투자를 위한 국내 R&D 예산을 대폭 감소하는 등 어려운 재정 여건, 미국의 긴축 장기화와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 등에 따라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점 및 ODA 사업 예산이 한번 증가하면 예전보다 축소되기 어려운 비가역적 성질을 지니는 점 등을 고려하면 ODA 예산 확대 속도의 적정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주요 사업 위주로 재원배분의 합리성과 집행가능성 등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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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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