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줄소송
행안부 일괄 도입 부작용
소규모 기관 실효성 없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에 휘말리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소송에 져 임금을 돌려준 곳도 있다. 정부의 임금피크제 일괄 도입이 실효성 없이 행정력과 재정만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7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과 행정안전부의 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 임금피크제 운영지침에 따라 도입됐다. 법적 정년인 60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로 퇴직 전 임금피크 대상자의 임금을 삭감한 절감 재원으로 청년고용 인건비를 충당한다는 취지다. 추가예산 투입 없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첫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이 나오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2022년 5월 26일 A씨가 과거 재직했던 B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 요지는 노사 합의를 거쳤더라도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것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임금피크 적용대상 기간 중 삭감된 임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실제 경북에서는 도 산하 공공기관 3곳의 퇴직자들이 임금피크제 적용기간 미지급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연수원은 지난 3월과 8월 임금피크 대상이었다가 퇴직한 직원 2명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미지급 임금(각각 1850만원과 2660만원)과 소송비용(1400만원)을 물어줬다. 경북개발공사도 퇴직 직원 4명이 지난 1월 소송을 제기해 같은 해 7월 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결정 판결을 받았고, 미지급 임금 1860여만원을 되돌려 줬다. 경북개발공사는 임금피크제 1년차 기간 동안 임금 5%를 삭감했으나 전문직위, 근로시간 단축, 신규채용 등의 임금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를 하지 않아 사실상 패소했다. 한국국학진흥원 퇴직 직원 5명도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을 제기해 내년 1월 판결을 앞두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경제과학진흥원 전현직 직원 14명이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직원들은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근로자들에게 정년연장을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임금피크제 도입이 무효라고 주장한다. 부산에서는 부산시설공단 재직자와 퇴직자 43명이 10억8000만원을 돌려달라며 임금피크제 무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공공기관의 주장을 받아들여준 판결도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의료원 전직 전문의 4명이 임금피크제 관련 미지급 임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지난 11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임금피크제는 정부가 도입 권고한 제도로 기존 근로자의 퇴출이나 사측의 개별이익을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별도 신규채용이 진행된 점, 의료직을 제외하고는 유리한 규정으로 적용된 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기초로 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합리성이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냈다. 앞서 서울교통공사 직원 301명도 지난해 10월 임금피크제로 피해를 본 임금과 퇴직금 70억6500만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당시 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후 신규직원채용, 업무경감조치 시행 등을 이유로 임금피크제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일괄 시행과 관련한 소송이 잇따르자 시민단체 등에서는 비판 성명을 내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줄소송을 당했다는 것이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경북도의 일부 공공기관은 조직 규모와 업무 특성상 업무 조정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 눈치만 보며 임금피크제를 무리하게 도입해 소송에 휘말렸다"며 "결과적으로 소송 대응 등으로 시민 세금과 행정력만 낭비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들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노사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개선하거나 소규모 기관 기준을 현재 10명 미만에서 50명 미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기관규모별 적용기준 등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과 협의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