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먼거리조업 이상기후 대응 어선안전 강화

2024-05-03 13:00:01 게재

3월 전복·침몰사고 분석 … 기상특보 지난해보다 3배 많아

2027년까지 인명피해 30% 감축 … 예산·어업인 참여 숙제

해양수산부가 기후변화 나홀로조업 원거리조업 등에 대응한 어선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2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38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강도형 해수부장관이 발표한 ‘어선안전관리대책’을 논의했다. 강 장관은 지난 3월 제주와 남해안 해역에서 발생한 연승·통발·자망어선 등 5건의 전복·침몰 사고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시행한다고 밝혔다.

대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고 어업인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은 숙제다.

한덕수(오른쪽 세번째) 국무총리가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어선안전관리대책 등 논의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출항·조업금지 풍랑경보 발효기준 강화 =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어선사고를 분석한 결과, 올해 3월에 발효된 기상특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많을 만큼 기상악화 문제가 잦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톤 미만의 작은 어선도 먼 거리로 출어했고, 어선안전조업국(수협)과 어업인 간 ‘음성확인’으로 사고여부를 판단해 신속하게 사고징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해수부는 이런 원인분석을 바탕으로 △조업 관리 강화 △사고판단 정확도 및 사고대응 역량 개선 △어업인 행동변화 적극 유도 △안전한 어선 건조 등 4개 분야에 대한 전략과 11개 세부과제를 담은 ‘어선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했다.

이번 대책으로 2027년까지 어선사고 인명피해를 30%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먼저 어선의 출항과 조업이 금지되는 풍랑경보 발효 기준을 강화한다. 특정 해역·시기에 기상특보가 집중되거나 지난 3월처럼 전복·침몰 등 대형 인명피해 사고가 연속해서 발생할 경우 출항과 조업을 일시 제한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 초속 21m 이상 바람이 불 때 풍랑경보가 발효하는데 기상청과 협의해 기준을 좀 더 낮추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준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는 초속 14m에서 경보기준 21m 사이 지점에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추정했다.

폐어구가 스크류에 감겨 전복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폐어구 불법 투기에 대한 처벌도 강화한다. 바닷물에 떠있는 폐어구 부유물이 스크류에 감겨 조타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선이 옆파도를 맞으면 전복하거나 침몰에 취약하게 된다. 이런 일로 어선이 전복·침몰한 경우는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 11건 발생했다. 해수부는 올해 하반기 관련 법(해양환경관리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사고징후를 더 빨리 감지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는 ‘선단선’ 역할도 높인다. 선단선은 10㎞ 이내 거리에서 함께 조업하는 어선 그룹이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돼도 선단선을 구성하면 출항할 수 있다.

선단선을 구성하면 먼 바다까지 나가는 근해어선도 통신이 안될 때 선단선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고, 사고가 났을 때 구조기관이 도착하기 전이라도 선단선에 의해 구조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금도 풍랑주의보 등 출항이 어려울 때 출항하겠다고 하면 선단선을 구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한다”며 “선단선을 구성해 나간 후 실제 해당 수역에서 조업하는지 점검하고 단속하는 것을 강화해 이 제도가 잘 운용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징후 자동인식’ 사고 판단 = 사고 여부에 대한 판단도 어업인의 ‘음성보고’에서 ‘사고징후 자동인식’ 방식으로 전환한다.

지금까지는 기상특보 여부와 조업해역에 따라 4~24시간 당 1회 어선에서 안전조업국(수협)으로 음성으로 위치를 통보하며 안전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위치통보가 없을 경우 안전조업국에서 어선으로 무선연락을 해 사고 여부를 판단하는 식이다.

해수부는 이를 어선위치발신장치가 모두 꺼지면 안전조업국에 자동알람이 울리는 ‘사고징후 자동인식’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어선마다 장착돼 있는 선박위치발신장치가 모두 꺼지는 경우는 고의로 꺼거나 전복 등 사고로 전파발신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을 경우”라며 “안전조업국의 관제요원에게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면 인근 선박을 통해 사고여부를 확인하고 구조기관이 출동하는 식으로 시범운영을 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사고징후 인식 방식을 전환하기 위해 위치발신장치를 고의로 끄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현행 과태료 처분에서 벌금과 징역형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또 어업허가 정지·취소 등 행정처분을 통해 면세유 공급을 제한하고 수산물 수매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전국 20개소에 있는 어선안전조업국도 통신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전하거나 노후 시설·장비도 교체하기로 했다.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 안전조업을 위해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등 어업인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발생한 5건의 전복·침몰 사고 중 4척의 어선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 해수부는 기상특보가 발효됐을 때 갑판에서 작업하는 어업인이나 2인 이하 어선에서 착용하게 돼 있는 구명조끼를 날씨나 승선인원과 관계없이 착용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날씨나 승선원 수와 관계없이 착용을 의무화하면 해경이나 어업지도선에서 점검·단속하는 것도 쉬워진다.

어업인들이 구명조끼 착용을 불편해 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착용감이 좋은 팽창식 조끼도 확대해 가기로 했다. 한 벌당 13만~15만원 수준의 팽창식 구명조끼는 어업인 40%, 정부 60% 부담으로 보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어선안전조업법을 개정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벌칙도 현행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1~6개월 어업정지로 강화한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를 계기로 어업인에 대한 직무교육도 강화하고, 내년 상반기부터는 어선안전감독관이 조업현장을 상시·불시 점검하기로 했다.

어선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복량 제한을 완화해 ‘길면서도 깊은’ 복원력이 강한 어선이 건조되도록 유도한다. 복원성 검사 대상 어선(24m→12m 이상 어선)과 바람세기 시험 적용 어선(40m→20m 이상 어선)도 각각 확대한다.

‘어선건조업 등록제’를 도입해 안전 인력이나 장비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업체만 어선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한 어선건조기반도 마련하기로 했다.

◆후속조치 필요 =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어선안전관리대책이 다뤄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각론은 향후 과제로 넘어갔다.

우선 풍랑경보 발효기준이 되는 풍속을 조정하는 일은 언제까지 할 것인지 일정도 불확실한 상태다. 사고징후를 자동인식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시기도 정하지 못했다.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사고가 아닌데 구조세력이 출동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게 이유다. 어선안전조업국 이전이나 시설개선에 필요한 예산도 예산당국과 협의해 마련해야 한다며 일정을 제시하지 못했다.

신속한 사고대응을 위해 취약시간대(오후 11시~오전 6시), 취약해역(먼바다, 제주·남해권 등)에 해경 안전조업국 등의 인력을 집중 배치해야 하지만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은 산출되지 않았다.

복원성 검사를 해야 하는 어선을 확대하면 어선검사인력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역시 미결과제로 남겼다. 어선검사를 담당하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 어선검사 담당 인력은 지금도 충분치 못한 상태다. 해수부는 수조나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어선검사를 하는 계측장비 구입 예산도 예산당국과 협의할 예정이다.

어선건조업 등록제를 도입했을 때 영세한 조선소의 경영이나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도 점검해야 한다.

한편 이번 대책을 담당한 해수부 어선안전정책과는 2020년 3월 어선안전관리를 위해 신설한 조직이다. 안전한 조업환경 조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어선사고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제도개선 △어선현대화 △어선안전문화확산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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