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휴대전화 개통 사기, 1년에 6000명

2024-05-22 13:00:12 게재

의사소통 어려운 점 노려 여러대 몰래 개통

장애인, 피해 입고도 신고·상담 어려움 겪어

서울시 장애인소비자 피해구제센터 ‘활약’

뇌병변장애인 ㄱ씨는 지난 1월 거리에서 만난 분양홍보관 직원 손에 이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식산업센터를 분양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고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직원은 ㄱ씨가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틈을 노려 3억5000만원짜리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ㄱ씨의 보호자가 계약취소를 요구했지만 분양사무소는 자필 서명 등을 근거로 계약을 취소해주지 않았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애인소비자 피해구제 전담센터’에서 수어통역사가 화상전화기를 이용해 청각장애인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6~9세 정도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 ㄴ씨는 안마의자 업체의 권유를 받아 얼떨결에 520만원 상당의 안마의자 렌탈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ㄴ씨 가족이 업체에 계약 취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장애인 소비자 피해가 날로 대형화·지능화되고 있다. 장애인들이 인지 능력, 의사소통이 어려운 점을 노린 분양계약, 물품 판매계약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기성 판매가 기승을 부린다.

대표적인 게 휴대폰 다회선 개통이다. 휴대폰 개통 시 신분증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활용해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여러대의 휴대폰을 개통한 뒤 대포폰 등으로 유통 시킨다. 이 같은 피해 사례가 한해 6000여명에 이른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가족이나 보호자가 항의해도 이미 법적 처벌을 피할 조치를 해놓은 점주들 때문에 피해 구제가 쉽지 않다.

장애인들이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피해를 신고하고 상담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 방법으론 상담이 불가능한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채널을 갖춘 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업체 설득·피해구제에 수개월 걸려 =

서울시 장애인소비자 피해구제 전담센터는 이 같은 어려움에 놓인 장애인들을 돕는 곳이다. 15개 장애 유형별 특성을 이해하고 이에 따른 상담을 진행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을 위해 화상전화기를 이용해 수어통역사가 상담을 실시한다. 디지털 기기 이용이 가능한 피해자들과는 카톡을 이용한 동영상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상담만 하는 게 아니다. 법망을 피해가는 업체를 설득 혹은 압박해 피해자들이 입은 금전적 피해를 보상받거나 부당한 계약을 해지 시키는 일도 센터의 역할이다. 센터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양소은 상담사는 “어떤 사고는 처리와 피해구제까지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며 “사기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설득과 회유를 지속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업체의 호응에 보람을 느낀 때도 있다. 장애인 중에는 두발의 크기가 많이 달라 신발을 두 켤레씩 사야 하는 이들이 있다. 센터는 이런 장애인을 위해 사이즈가 다른 신발을 한개씩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신발·스포츠용품업체에 했다. 대부분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는데 스포츠 브랜드 ‘F’사가 선뜻 요청에 응했다. 양 상담사는 “해당 브랜드 매장에 가면 장애인들이 한켤레 값만 주고 신발을 살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장애인 소비자 피해는 증가하고 있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센터는 현재도 전국에서 유일한 장애인소비자 피해구제 센터다. 4명의 상담사와 1명의 수어통역사가 월 100건에 달하는 접수와 처리를 도맡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례만 1000건에 달한다. 실무가 어려운 장애인 대신 서류작성, 행정처리 등이 모두 센터 상담사들 몫이다. 센터 관계자는 “1명뿐인 수어통역사가 휴무하는 날엔 청각장애인에 대한 상담을 진행할 수 없다”며 “인력, 장비 등이 확충되면 더 많은 장애인소비자들이 피해 상담과 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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