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각자도생 길 가는 중앙은행들

2024-06-21 13:00:01 게재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일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급상승한 물가를 잡기 위해 2022년 7월 이후 지난해 9월까지 10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지 약 2년 만에 ‘피벗’을 결정한 것이다. ECB는 지난 9개월간의 기준금리 동결로 2022년 하반기 10%를 넘어서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근접해 이전과 같은 심각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인하 배경을 밝혔다.

유로존 핵심 국가인 독일경제 -0.3% 역성장에 ECB 금리인하 선택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ECB의 속내는 사실 복잡하다. 기준금리 인상 전 ECB는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유로존 내 경기침체 문제를 타개하고자 2016년 3월부터 줄곧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2년 외부적 요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는데 이는 곧장 경기침체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유로존은 지난해 연 0.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에 그쳐 2022년도 유로존 경제성장률인 연 3.3%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로존 핵심 국가인 독일이 지난해 4분기 충격적인 마이너스 0.3%의 역성장을 기록했고, 이는 ECB가 기준금리 인하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ECB가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의 고금리 정책을 고수할 경우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ECB가 앞으로 추가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에 대해 ‘유로존이 인플레이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선을 그은 것이나,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앞으로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은 고물가를 감수하더라도 유로존의 경기침체 만큼은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거나 물가가 예상외로 치솟는다면 유로존으로서는 자칫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외통수에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미 연준은 다른 이유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다. 당초 올해 기준금리를 6월부터 3회 인하할 계획이던 미 연준은 최근 연내 1회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미 연준은 여전히 물가 목표치인 2%를 훌쩍 넘는 ‘끈적한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굳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지난 11일 세계은행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연 2.5%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1월 세계은행이 예상했던 전망치를 0.9%p나 웃도는 것으로 불과 6개월 사이에 미국 경제가 얼마나 뜨거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미 노동부가 밝힌 미국 5월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수는 지난달 대비 27만2000개나 늘어나 이제는 구인난을 고민해야 할 정도다.

호황에 강달러 이점 누리는 미국경제 금리인하 서두를 이유없어

유로존 등 다른 국가들과 달리 현재 미국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전쟁 등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으로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화의 수익성마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면서 미 연준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동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또한 2025년 이후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L자형 저성장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미 연준 입장에서는 현시점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위기상황에서 이를 단행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추던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제 각자의 사정에 맞춰 서로 다른 길을 갈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이 열린 것이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