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분야 불공정개선
“문화산업, 뿌리 깊은 불공정 유통 저지돼야”
제22대 국회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논의 … 불공정행위 주요 유형들 명시, 창작자 보호
문화산업 분야에 공정한 거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의원 공동 주최로 다양한 관련 토론회들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27일엔 ‘문화산업 불공정 개선 위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입법 토론회’가, 11일엔 ‘불투명한 정산과 불공정한 분배 문제 해결을 위한 영화산업 위기 극복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문화산업 분야 불공정을 개선하기 위한 문화산업공정유통법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의원 입법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이번 국회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종휘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17일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의 철학은 문화산업에 뿌리 깊은 불공정한 유통 환경을 강하게 저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충분히 법 제정의 필요성이 있다”면서 “지난 국회에서도 논의하는 등 법안이 성숙해 온 만큼 새로운 국회에서 빨리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산업 토대인 창작자 권리 보장 필요 = 2022 콘텐츠산업백서에 따르면 2021년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137조5080억원으로 나타났다.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7.2% 증가했으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5.0%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2021년 기준 124억5000만달러(17조1610억원)로 가전제품 84억2000만달러(11조5951억원), 디스플레이패널 36억달러(4조9604억원)를 추월해 대표적 수출 주력상품으로 자리했다.
이처럼 콘텐츠산업은 날로 성장하는 가운데 국가 차원의 굵직한 정책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6월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제8차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회의에서는 ‘K-콘텐츠 글로벌 4대 강국 도약 전략’(전략)이 발표됐다. 전략에는 콘텐츠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콘텐츠산업의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대형 플랫폼 위주 유통은 갈수록 몸집을 키우는 반면 영세한 개별기업이나 창작자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2023년 3월엔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작가가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힘겨워 하다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창작자는 문화산업의 토대이며 창작자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문화산업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플랫폼 판촉 비용 작가에게 떠넘겨 = 문화산업 창작자들의 피해 사례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화산업 불공정 개선 위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입법 토론회’에 따르면 웹툰 분야의 경우 플랫폼의 판촉 비용을 작가에게 떠넘기는 사례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플랫폼은 비용을 지불한 유료 코인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너스 코인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이럴 경우 플랫폼이 자체 진행하는 프로모션이기 때문에 웹툰 작가는 보너스코인 사용 여부에 대해 동의하거나 거부하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없게 된다. 이후 보너스코인에 대해서는 마케팅을 위해 제공되는 코인이라는 이유로 웹툰 작가에게 정산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또한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산 내역의 세부 항목이 명확하지 않아 웹툰 작가들은 작품의 총매출과 순매출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겪는 불공정 사례도 논의됐다. 우선,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경우, 신진 작가들은 일러스트 작업 보수가 시간당 수익으로 환산했을 때 최저임금보다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업체, 구두계약 후 정산을 미루다가 미지급하는 업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신진 작가뿐 아니라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도 겪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계약서에 저작권 귀속, 사용 기간, 사용 범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영화인연대 ‘깜깜이 정산’ 문제 제기 = 영화 분야에서도 불공정 거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영화인연대)는 참여연대와 함께 CGV 등 멀티플렉스 3사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날 영화인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극장 측에 영화배급사 및 제작사에 대해 각종 할인과 무료티켓 등 프로모션에서 발생하는 상세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등 불공정한 행위를 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영화인연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극장 3사의 스크린 수는 전국 멀티플렉스 체인 스크린 수의 98%를 넘는다. 극장 3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수익 악화를 이유로 티켓 가격을 인상했는데 이로 인해 관객들의 부담이 커지며 관객들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극장들은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해 각종 할인제도를 진행했다.
영화인연대는 극장들이 티켓 판매로 발생한 매출을 투자사 및 배급사와 분배하는 과정에서 ‘깜깜이 정산’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사 할인 내역 등에 대해 ‘비밀 유지계약’을 내세우며 상세 내역 공개를 거부한다는 주장이다. 영화인연대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에 극장 3사를 신고한 데 이어 11일 ‘불투명한 정산과 불공정한 문제 해결을 위한 영화산업 위기 극복방안 토론회’를 열며 문제제기를 지속하고 있다.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등 안돼 =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문화콘텐츠 불공정행위 주요 유형들을 10대 유형으로 명시해 금지하고 있다. 10대 유형에는 △제작방향의 변경, 제작인력의 지정 및 교체 등 제작활동 방해 행위 △문화상품 납품 후 수정 및 보완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 △판매촉진 비용 및 가격할인 비용을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 △지식재산권의 양도를 강제하거나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식재산권의 사용으로 인한 수익을 분배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불공정행위들을 금지 행위로 명시할 경우, 법 적용이 용이하며 금지행위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행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판 애니메이션 등 9개 콘텐츠산업 내 기업 중 기획 제작 유통 배급 관련 기업의 33.6%는 10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 후 재작업 요구 및 미보상이 23.5%, 현저히 낮은 대사 책정이 22.6%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기업 중견기업과 거래하는 프리랜서의 90% 이상이 제작 관련 방해행위, 제품 납품 이후 수정 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변호사는 “기존 문화 관련 법안들에 공정거래 질서 관련 조항이 있지만 제재가 미비하며 실효성 없는 제재가 많다”면서 “문화산업 분야에 상생협력 등 공정거래와 관련해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기존 법으로는 소규모 업체들을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제정되면 국내 사업을 영위하는 해외 유통업자에 대한 적용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