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 아닌 조항의 헌법불합치, 소급 안돼”
노동조합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 관련
금속노조 헌법소원 인용에도 “재심 안돼”
대법 “개정 시한까지는 기존 법률 적용”
행정당국이 내린 시정명령의 근거 조항이 뒤늦게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법조항이 개정됐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형사처벌 관련 규정이 아니라면 바뀐 조항의 효력은 과거 사건에 소급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과거 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에 대해 제기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고 22일 밝혔다.
금속노조는 2010년 11월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5개 회사와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사무실과 집기, 비품 등을 사측에서 제공받기로 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노동조합법은 회사가 노조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을 노조의 자주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금지했다.
금속노조는 시정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6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사건에 적용된 노조법상 ‘운영비 원조금지 조항’에 대해 2018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노조법은 사용자의 노조 운영비 지원 행위를 금지하면서 사무소 제공 등 일부만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노조의 자주성이 저해될 위험이 현저하지 않은 경우까지 운영비 지원을 금지해,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노조법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2020년 6월 개정됐다.
항소심 중 청구했던 헌법소원의 결과가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나오자, 금속노조는 “헌재 결정에 따라 행정소송 결과도 바뀌어야 한다”며 2018년 6월 재심을 청구했다.
헌재법 47조에 따르면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은 그 결정 당일에 효력을 상실하지만 ‘형벌에 관한 법률’은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 2015년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위헌 선고를 했을 때에도, 그 이전 헌재의 마지막 합헌 결정 시점(2008년)부터 2015년 사이 간통죄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이 소급 적용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참조해 금속노조는 노조법상 운영비 원조금지 조항도 형벌에 관한 규정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6년 넘게 심리한 끝에 금속노조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개선 입법이 이뤄졌으나 소급효를 규정하는 경과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 법원으로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정한 개정 시한까지는 종전의 법률을 그대로 적용해 재판할 수밖에 없다”며 “재심 대상 판결에 재심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과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형벌 조항에 대해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되면 이를 소급 적용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형벌과 무관한 조항의 경우에는 위헌 결정이 있는 때부터 효력을 잃고 소급 적용은 되지 않는다. 운영비 원조금지 조항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시정명령에 관한 규정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헌법불합치 결정인 경우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까지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대법원에서 금속노조에 패소 판결을 확정한 2016년 3월까지는 기존 법률이 유효했으므로 법원으로서는 이를 근거로 재판할 수밖에 없고 개정된 법률에 소급 적용을 위한 특별 규정이 없는 이상 뒤늦게 재심을 할 수는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개정된 법에도 소급효과를 규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으므로 운영비 원조금지 조항은 소급해 효력이 상실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