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정책 바뀔라…재건축단지 ‘이상기류’

2024-12-19 13:00:11 게재

계엄 여파로 정치 시계 빨라지자

재건축 정책 바뀔 수 있다 ‘우려’

초고층 고집 꺾고 공공기여 수용

12.3 불법 계엄 여파로 탄핵정국이 조성되면서 재건축 시장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19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층수와 공공기여 문제로 서울시와 사사건건 갈등하던 재건축 단지들이 기존 입장을 크게 바꾸고 있다.

서울 재건축단지들이 초고층 계획을 완화하고 공공기여 시설을 수용하는 등 서울시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노인데이케어 시설을 짓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경. 사진 서울시 제공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은 59층 초고층 재건축 입장에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68층 재건축을 추진했던 이 아파트는 남산 조망 때문에 높이 문제로 서울시와 의견 차이가 컸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 제안을 수용해 층수를 낮추고 대신 사업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공기여 문제로 시와 갈등을 빚던 대규모 단지들도 빠르게 입장을 바꾸고 있다. 강남구 대치미도 아파트는 홍수에 대비한 저류조 설치와 노인데이케어 시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이 아파트는 두 시설을 공공기여로 내놓기로 했지만 중간에 태도를 바꿔 시와 충돌해왔다.

여의도 재건축 1호 단지인 시범 아파트도 초기 거센 반발과 달리 노인요양시설을 수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시범에 이어 대다수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도 시의 제안을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재건축 단지들의 이례적인 ‘협조 무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재건축 이후 막대한 주민 숫자 등을 바탕으로 지자체에 고압적 자세를 유지하던 재건축 단지들이 속속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인 수정안을 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단지 조합 태세 전환 왜? = 대형 재건축단지 조합들이 자세를 낮춘 것은 서울시 강경 기조에 1차 원인이 있다. 오세훈 시장은 앞서 공공기여 시설을 거부하는 단지들은 재건축 사업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재건축 재개발은 인허가권을 가진 시의 협조 없인 원활한 사업 진행이 어렵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단지 조합들의 태도 변화는 비상계엄 여파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정치시계가 빨라지면서 내년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졌다. 대선 1년 뒤인 2026년 6월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계엄 사태가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높다. 대통령에 이어 서울시장까지 바뀔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재건축 단지들의 조급함이 커졌다는 것이다. 강남권 한 재건축 단지 조합장은 “사업시행인가 단계에 접어들면 인허가가 자치구로 넘어가지만 사업계획 수립까지는 서울시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가 닥치기 전 그 단계까지 진행시켜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들의 조급함이 더해지는 것은 오 시장이 탄핵으로 인해 조기 대선에 불려 나갈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내년 6월 이후 대선이 실시되면 보궐선거 없이 2026년에 지방 선거를 하지만 그 전에 대선 일정이 잡히면 내년에 보궐을 치뤄야 한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 조합 관계자는 “지금 재건축을 추진중인 단지들은 5~10년을 기다려온 곳들”이라며 “또다시 그 세월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서울시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사업 속도를 높이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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