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교환사채 발행 4배 급증…“자사주 소각 대신 자금조달”

2025-01-17 13:00:19 게재

밸류업 자사주 처분 공시 강화 압박 피하기 꼼수

주식관련사채 권리행사 11.3%↑· 건수 20.4% ↓

지난해 교환사채 발행 금액이 전년 대비 4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주주 지분율 희석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자사주를 대상으로 한 교환사채 발행이 급격하게 늘었다. 이는 기업의 자금조달과 함께 자사주 처분에 대한 공시강화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한 해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한 주식관련사채 권리행사 전체 금액은 전년 대비 11.3% 증가했다. 다만 행사 건수는 20.4% 줄었다.

◆CB 9.3% 증가…BW 75.5% 감소 = 17일 한국예탁결제원은 작년 한 해 동안 주식관련사채 행사금액은 4조4154억원으로 전년 보다 11.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행사 건수는 3832건으로 전년 대비 20.4% 감소했다.

종류별 행사금액을 살펴보면 교환사채(EB)는 1조973억원으로 전년(2638억원) 대비 316.0% 급증했다. 전환사채(CB)는 3조1077억원으로 전년(2조8433억원) 대비 9.3% 증가했고,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2104억원으로 전년(8593억원) 대비 75.5% 급격히 감소했다.

종류별 권리행사 건수는 CB가 2032건으로 전년(3011건) 대비 32.5% 감소, EB 246건으로 전년(273건) 대비 9.9% 감소했다. 반면 BW는 1554건으로 전년(1533건) 대비 1.4% 증가했다.

◆자사주 기초 교환사채 비중 급증 =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이 급증했다. 교환사채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나 다른 회사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을 말한다. 과거 교환사채 발행은 주로 자회사 주식을 담보로 이뤄졌으나 작년엔 자사주 활용 사례가 급증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자사주를 기초로 하는 교환사채 비중은 70~80%에 달한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 발행 절대 건수 뿐만 아니라 전체 EB 발행 중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비중도 상승했다”며 “기업가치 밸류업과 연관해 자사주 처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년엔 호텔신라(1328억원)와 농심(1385억원) 등 주요 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자사주 담보 교환사채를 발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자화전자(375억원), 씨에스윈드(446억원) 등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도 같은 방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자사주를 기초로 한 교환사채 발행이 늘어난 건 주주 환원을 위해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기업밸류업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가운데 자사주 공시 강화에 나서자 기업들이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보다는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보통 교환사채 표면이자율은 0%로 발행된다. 일례로 호텔신라가 발행한 교환사채는 만기 이자율까지 0%로 채권자가 사채를 통해 얻는 이자 수익이 없다. 주가가 최소 교환 가격만큼 오를 거라는 기대로 투자하는 셈이다. 호텔신라 자사주 교환사채의 1주당 교환 가격은 6만2200원으로 발행 당시 주가에 비해 15% 높다. 발행 규모가 1328억원에 육박하는데, 호텔신라는 이자를 내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호텔신라는 이 자금으로 지난해 연 4.65%로 받았던 은행 대출 1500억원을 상환하며 교환사채를 통해 비용을 대폭 아끼게 됐다.

◆주주환원 기대한 일반 주주들 불만 = 다만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 환원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불만이 커졌다. 교환사채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을 설비 투자, 차입금 상환 등에 활용할 수 있지만 주가 상승으로 교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돼 유통되면 주가 하락 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자사주 제도 개선 개선안 입법 절차가 다소 지연되면서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한 후 소각 등 처리 계획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며 자사주 처분 시 주식 가치 희석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에코프로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 반면, 이를 소각하지 않고 EB로 전환해 활용할 경우 주주가치 제고에 부정적이다. 최근 발행한 EB 대부분이 표면이자율, 만기이자율 모두 0%다. 해당 EB를 보유한 펀드나 기업은 시세차익을 보기 위해 교환한 주식을 매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금융당국은 개정안을 통해 기업들의 이 같은 행위를 규제할 방침이다.

한편 주식관련사채란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발행 시 정해진 일정한 조건(행사가액, 행사기간 등)으로 발행회사 주식 또는 발행회사가 보유한 타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 또는 교환이 가능한 채권이다.

투자자 측면에서 주식관련 사채는 안정적인 이자수입과 차익실현이 기대된다. 주가 하락 시 채권 보유를 통해 안정적인 이자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주가 상승의 경우 권리행사(전환·교환·신주인수)를 통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는 행사 청구 시 채권으로 대용납입이 필수이나,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현금으로도 행사가 가능하다.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행사 청구 시 신주가 발행되므로 발행사의 자본금이 증가한다. 교환사채(EB)는 기발행 주식이 교부되므로 자본금에는 변화가 없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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