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윤 대통령, 탄핵 사유 놓고 공방
국회측 “비상계엄, 균형 시스템 파괴한 국헌 문란”
윤 대통령측 “부정선거 의혹 해소 위한 평화적 계엄”
헌재, 2월 13일 8차까지 변론 추가 … 증인 6명 채택
‘12.3 내란’ 사태와 관련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소추 사유를 놓고 국회측과 윤 대통령측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국회측은 비상계엄이 권력 견제 시스템을 파괴한 국헌문란 행위로 위헌·위법성이 중대하다며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윤 대통령측은 국헌문란 행위는 거대 야당의 대통령 직무 방해(탄핵 남발)이며 이른바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한 평화적 비상계엄은 정당하다고 맞섰다.
헌재는 16일 오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에 체포된 윤 대통령이 불출석한 가운데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전날 윤 대통령측이 변론기일 변경 신청을 낸 것과 관련,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탄핵심판을 진행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재로 열린 이날 2차 변론은 사실상 첫 변론이나 마찬가지다. 1차 변론에서는 윤 대통령 불출석만 확인하고 4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이날 변론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를 놓고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윤석열 대통령)이 본격적인 공방을 벌였다.
◆국회측 탄핵소추 사유 5가지 제시 = 국회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은 소추의결서 요지를 진술하며 탄핵소추안 인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피청구인 윤석열은 헌법을 수호하기는커녕 헌법을 유린했다”며 헌법과 법률 위반 내용을 설명했다.
정 위원장이 언급한 탄핵 사유는 △계엄 조건 위반 △계엄 선포 절차 위반 △국회 기능 침탈 △계엄포고령 1호 1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침탈·사법부 인사 체포 구금 시도 등 다섯 가지다.
이와 관련 국회 소추위원측 대리인 김진한 변호사는 “국헌 문란 행위는 단순히 국가기관을 침범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균형적인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비상계엄을 두고 “독재정치를 ‘법’과 ‘제도’로 허용하는 것”이라며 “국가 긴급권 발동 요건은 대통령의 자유재량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대통령 판단을 정당화할 정도의 위기상황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에는 대통령이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 국무회의 심의절차를 두고 있다”며 “국무위원들은 그 회의가 정상적인 회의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있고 정상적 회의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비상계엄을 문서형식으로 남겨 국무위원의 서명을 받지 않고 국회에 통고의무도 위반해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 봉쇄와 관련해선 “유일한 헌법적 견제 수단인 계엄 해제 요구권을 파괴하려 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도 위반이다. 체포지시 행위가 계엄 해제 요구 의결 차단 목적이라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침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비상계엄 당시 선관위 침입과 직원 휴대전화 압수수색이 헌법의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도 짚었다.
특히 계엄 포고령을 두고 국회측은 “비상계엄이 적법했다고 해도 국민의 정당활동 자유, 언론출판 자유를 침해하는 포고령은 위헌”이라고 강조했다.사법부 주요 인사에 대한 구금지시는 국민이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 사항이라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어록을 인용하며 “헌법의 적, 민주주의 적이 다시는 준동하지 못하도록 만장일치로 신속하게 피청구인을 파면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측, 부적합 사유 4가지 제시 = 반면 윤 대통령측은 탄핵심판 청구가 부적합한 이유 4가지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 대리인인 헌법재판관 출신 조대현 변호사는 우선 “국회에서 부결된 탄핵소추안을 재차 의결한 것은 위배”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적법하게 상정됐고 찬반 표결까지 이뤄졌기 때문에 투표 불성립이 아닌 부결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된 탄핵소추안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도 언급됐다.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이 내란수괴’라는 사유가 없었다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상계엄 선포 위헌 여부는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 변호사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계엄선포권 등이 부여돼 있다”며 “비상사태 여부와 필요성은 국익 관련한 정보를 먼저 아는 대통령이 판단할 수 있고 국회와 법원은 심판할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탄핵소추는 대통령 직무수행을 방해하던 과반 국회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라며 탄핵소추권의 남용이라고 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선거 결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의혹인 ‘부정선거론’마저 등장했다.
윤 대통령측 대리인인 배진한 변호사는 “대통령은 현 상황을 비상사태로 확신했다. 국헌문란인 부정선거에 대한 정보가 많았고 의혹을 밝히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라며 “선관위 서버 해킹이 발견됐고 유권자 등록현황 관리가 부실했으며 투표지 무단인쇄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측은 부정선거 의혹과 더불어민주당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연속적인 탄핵 시도 등을 지적하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또 계엄에 관여한 다수 군인이 윤 대통령의 무력 사용 지시를 증언한 것 등과 관련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배 변호사는 “부정선거가 최대 국정 문란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세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대통령은 부정 선거에 대한 제보를 워낙 많이 받았다. 대통령은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의심스러워했다”고 강조했다.
또 민주당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을 연속으로 시도했고 간첩죄 개정을 막는 등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계엄 선포 배경을 강조했다.
◆국회측 증인 5명, 윤 대통령측 증인 1명 우선 채택 = 한편 헌재는 이날 국회측이 신청한 증인인 조지호 경찰청장,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등 5명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또 윤 대통령측 신청 증인 중에서는 우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채택했다.
헌재는 또 지난 3일 1~5차 변론기일을 일괄 지정한 데 이어 이날도 2월 6일 6차, 2월 11일 7차, 2월 13일 8차 기일을 모두 정했다. 추가로 지정된 변론기일은 오전 10시부터 하루 종일 진행하기로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