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라 무시했던 공수처에 구속

2025-01-20 13:00:09 게재

윤 대통령, 사법절차 무시 일관 ‘자승자박’

검찰 추가 수사 거쳐 다음달초 기소 전망

“저 조직에 엘리트들이 가려고 안한다, 3류, 4류들이 간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유튜브에 출연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3년가량이 지나 윤 대통령은 자신이 폄훼했던 공수처에 의해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차은경 부장판사는 19일 새벽 2시 50분쯤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47일, 공수처에 체포된 지 나흘 만이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된 것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차 부장판사는 전날 오후 2시부터 4시간 50분가량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이날 새벽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내줬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징후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의 정치활동까지 금지하는 불법적인 계엄포고령을 발령하고, 계엄군과 경찰을 투입해 국회 봉쇄와 비상계엄 해제 의결 방해를 하려했다는 게 혐의의 골자다. 체포 요건이 되지 않는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 주요 인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체포·구금하려한 혐의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직접 심문에 참석해 국무위원들에 대한 잇단 탄핵 등 사실상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해 계엄을 선포했고, 질서 유지 목적으로 최소한의 병력만 투입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내란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하는 만큼 범죄의 중대성이 크다는 점도 영장 발부 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전후해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텔레그램을 탈퇴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공수처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측이 ‘대통령이 의원들을 체포 또는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군경 지휘부의 진술이 거짓이거나 오염됐다고 주장하며 계속해 혐의를 부인한 점,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한 점, 체포 후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조사를 거부한 점 등도 구속영장 발부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혐의를 부인하고 사법절차를 무시해온 윤 대통령의 태도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첫 구속이라는 사태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영장이 발부되자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울 정도의 엉터리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법원을 비판했다.

공수처는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체포기간을 포함해 최장 20일이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고위직 경찰공무원만 기소할 수 있고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없어 1주일 가량 윤 대통령을 더 수사한 뒤 검찰에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공수처와 대검찰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양측이 각각 10일씩 수사하기로 사전 협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이달 24일 전후에 사건을 넘기면 검찰은 다음달 5일을 전후해 윤 대통령을 기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기소 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

기소가 이뤄지면 1심 법원은 최장 6개월간 윤 대통령을 구속할 수 있다. 법원은 이 기간 동안 재판을 마치기 위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1심 선고 시점은 이르면 8월초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윤 대통령측이 공수처와 검찰의 수사권 문제와 증거능력 등을 꼬치꼬치 문제 삼으면 재판 절차가 상당히 지연될 수도 있다. 구속기간 안에 1심이 끝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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