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주주의 홈플러스 회생책임 지금부터다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에 대해 청구한 검찰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형사절차 상 구속요건에 이르지 않는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그러나 이는 법리적 판단일 뿐 경영과 도덕적 책임까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 역시 “사건의 피해 결과가 매우 중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영장기각은 무죄선고도 책임면제도 아니다.
김 회장 등 경영진이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1000억원대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해 투자자 손실을 초래했는지 여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사안이다. 다만 형사책임과 별개로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무너져가는 홈플러스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회생시킬 것인가이다.
회생은 공회전,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홈플러스 회생의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유통산업 구조 변화와 소비위축 속에서 대형마트의 영업 기반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다. 회생이 지연될수록 기업가치와 청산가치는 함께 깎인다. 그럼에도 회생 과정에서 책임주체와 고통분담의 순서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현장상황은 이미 심각하다. 최근 홈플러스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임직원 급여 지급이 지연되고, 일부 점포의 영업이 중단되는 등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전단채 피해자들 처지는 더 절박하다. 평생 병원 청소일을 하며 모은 1억원을 투자한 모 70대 피해자는 “이 돈이 없으면 노후가 무너진다”고 울부짖는다. 이들은 투기를 한 것도, 큰 수익을 노리고 고위험 상품에 투자한 것도 아니다. ‘홈플러스’라는 이름과 금융시스템을 믿었을 뿐이다. 이들은 이해관계자임에도 실질적인 논의 테이블에서는 뒤로 밀려 있다. 법적권리와 실제 보호 사이의 간극이 불신과 분노를 키우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회생계획안이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 매각과 대규모 점포 폐점을 중심으로 한 회생안은 단기적 현금확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업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방식의 회생은 회생이 아니라 ‘관리된 청산’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점포 축소가 반복될수록 브랜드 신뢰와 청산가치마저 함께 소멸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태의 종착점은 대주주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기업이 무너지면 대주주도 함께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이다. 피해자 단체와 정치권이 수천억원에서 1조원대에 이르는 출자와 손실분담을 김병주 MBK 회장과 홈플러스 경영진에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징벌이 아니라 이미 소멸된 기업가치와 피해 규모를 고려한 최소한의 책임선이다.
그럼에도 대주주들이 현재 보이는 모습은 ‘책임의 외주화’다. 회생의 대가는 투자자와 현장, 협력업체에 전가된 채 출구를 찾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회생이 지체되는 동안 기업의 가치와 청산가치는 빠르게 낮아지는 반면 그 비용과 위험은 노동자와 투자자, 협력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회생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역시 선택의 주체로 서 있다. 물론 경영 실패의 책임이 노동조합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에서 구조조정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해법이 될 수 없다. 회생절차가 길어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구조조정보다 아무 결정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회생지연이 더 큰 위험이 된다. 그 끝이 청산이라면 가장 큰 피해자는 조합원과 협력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정치권도 자유롭지 않다. 홈플러스 사태는 고용과 지역경제,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는 구조적 위기다. 그나마 최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홈플러스 회생 문제를 포함한 민생현안에 대해 공감대를 이룬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는 출발선일 뿐이다.
고통분담에 대한 대주주의 분명한 선언 필요
결국 모든 해법은 대주주의 실질적 책임 이행이다. MBK는 회생 개시 후 3000억원 규모의 재정적인 부담을 했고, 앞으로 M&A가 성사되면 최대 2000억원을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조와 피해자단체는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 책임있는 해법을 요구한다. MBK 김병주 회장 등의 고통분담에 대한 분명한 선언 없이는 어떤 회생계획도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책임을 전제로 정부는 회생조건을 관리해야 하고, 정치권은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 역시 선택의 주체로서 회생가능한 해법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책임의 순서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홈플러스 회생은 다시 지연되고 그 비용은 결국 사회가 떠안게 될 것이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