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순진한 한국은행 경기 평가
한국은행이 20일 ‘1월 금통위 결정시 경기평가’(이지호 조사국장 등)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지난해 11월 전망치(1.9%)보다 0.2%p 정도 낮은 1.6~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심리 위축의 영향으로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부문이 부진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지난해 4분기 말 높아진 정치 불확실성이 올해 1분기까지 지속되다 2분기부터 점차 해소되면서 경제심리가 하반기에는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을 전제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올해 2분기부터는 불확실성이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는 정세인식이다. 아마도 이러한 판단의 근저에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인용하고 조기대선 일정이 가시화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여기까지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3월)과 조기대선(5월)으로 이어진 평화적(?) 정치일정의 경험에서 나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식에 기초한 분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전의 경험을 단순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근의 사태 전개에서 확인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설마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역사책에나 있는 줄 알았던 ‘계엄’이라는 말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자, 더 끔찍한 ‘내란’ ‘폭동’과 같은 단어가 눈앞에서 거짓말같이 구현되고 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내전’이라는 용어도 공공연히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극우선동가들은 이미 내전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내전은 전쟁이다. 국가와 국가가 아닌, 한 나라 안에서 같은 국민끼리 전쟁을 하는 상황이다. 이번 보고서는 거기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경제를 나쁜 정치에서 분리하고 싶은 분석가들은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각종 데이터가 일정한 모형을 통과해 만들어진 숫자를 과학의 힘으로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역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신문과 방송의 머리를 장식하는 사건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최소 2~3차례 예측할 수 없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의 명운이 걸린 헌재와 법원의 판정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현실이다.
누구나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그 경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근 우리가 겪는 초현실적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정치 불확실성이 다소 낮아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완화된다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크기도 더 작아질 것이다.”(한은 보고서)
제발 그렇게 되길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