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 길어지면 국민경제에 직격탄 ①
내란사태에 ‘트럼프 쇼크’까지 내우외환 직면한 한국경제
올해 GDP 감소율만 따져도 6조원대 감소
환율 급등으로 기업 손해는 천문학적 규모
수입물가 상승 … 서민들엔 물가급등 폭탄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내란사태가 50일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추락했고 경제는 위태롭다. 앞으로 국민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피해는 가늠하기도 힘들다. 그나마 우리 국민이 ‘내란사태’쯤은 돌파할 역량을 갖췄단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 정도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은 이런 ‘자위’로 만족하기엔 잃은 게 너무 많다.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직면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에 내란사태란 초유의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21일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중심주의’에 대외불확실성은 극한까지 커졌다. 앞으로 우리 국민에겐 어떤 추가 청구서가 날아들지 모를 형국이다.

◆직접 경제적 피해 얼마나 될까 = 내란사태가 우리 경제에 준 충격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한국은행 조사국은 내란사태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소비 등 내수를 중심으로 약 0.2%p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심리가 위축된 때문이다.
실제 한은은 계엄 전인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1.9%로 예상했다. 현재는 이 수치가 1.6~1.7%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내달 25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종전 전망치보다 0.2~0.3%p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며, 이 중 약 0.2%p가 계엄 여파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올해 성장률을 1.9%로 가정한 실질 GDP는 2335조4370억원이다. 이보다 0.2%p 낮은 1.7%로 계산하면 실질 GDP는 2330조8530억이다. 작년보다 4조5840억원 감소한다는 것이다. 단순 계산하면 내란 여파로 올해에만 국민경제에 4조~5조원대 손실을 준다는 취지다.
이미 지난해 4분기 GDP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한은은 조만간 발표하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인 0.5%의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0.2%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연간 실질 GDP는 4분기 성장률을 0.5%로 가정하면 2291조8910억원, 0.2%로 가정하면 2290조1740억원으로 1조7170억원 차이가 난다. 결국 지난해 4분기와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고려한 GDP 감소분을 합하면 최소 6조3010억원에 달한다.
◆설 앞두고 고물가까지 감내해야 = 간접 경제충격까지 계산하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내란사태 직전 139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은 12.3 계엄 이후 1500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수입 재료를 가공해 국내에 팔거나 수출하는 기업들은 그만큼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기업은 수익이 줄고, 소비자들은 비싼 물가를 감내해야 한다.
실제 기름값을 비롯해 식료품비, 커피값, 외식비 등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모두 국제유가와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도미노 효과’ 탓이다.
국내 유가는 리터당 1800원 진입을 목전에 뒀다. 전 국민이 매일 한잔 이상 먹는다는 커피값도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외식비는 가족끼리 외식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올랐다 과자값도 오름세가 확연하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공시 자료를 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리터당 1727.31원으로 집계됐다. 1800원대가 코 앞이다. 국내 유가는 전국 전 지역에서 15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도 두바이유 기준 지난 15일 배럴 당 82.24달러로 지난해 10월 8일(78.98달러) 이후 최고치를 매일같이 갈아치우는 상황이다. 국제유가 변화는 통상 국내유가에 2~3주 뒤 반영된다. 결국 당분간 국내유가 상승세가 불가피하고 휘발유가격도 조만간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다.
외식, 식품물가에 이어 커피값까지 오른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오는 24일부터 톨 사이즈 음료 22종의 가격을 200~300원 인상한다. 스타벅스는 최근 5개월 동안 3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매일유업 관계사 엠즈씨드가 운영하는 폴바셋도 오는 23일부터 제품 28종 가격을 평균 3.4% 올린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11월 인스턴트 커피, 커피믹스, 커피음료 등 출고 가격을 평균 8.9% 인상했다. 이 밖에 커피빈, 더벤티도 지난해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외식물가도 계속 오름세다. 특히 김밥(15.7%), 삼겹살(9.1%)은 최근 3년 연속 오르고 있다.
정부 눈치에 가격인상을 망설이던 기업들이 어수선한 정국을 틈타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내란사태 청구서’가 쌓여만 가는 형국이다.
◆외신도 “한국경제 시련 직면” =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경제가 내란사태 후폭풍과 트럼프2기의 이중충격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성장을 위한 고투: 정치적 충격이 경제적 근심을 더하다’라는 기사에서 “아시아에서 4번째로 큰 한국 경제에 이러한 정치 상황이 원화가치 하락과 성장둔화 등 기존 문제에 추가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보호주의 무역과 이민 정책이 미국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 매파가 돼 원화와 한국 성장률에 추가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배터리 공장을 지으려 (미국으로)몰리면서 지난해 한국은 미국의 최대 투자국이 됐다”며 “그러나 한국산 상품 수입 급증은 트럼프의 오랜 골칫거리인 (대미) 무역 흑자를 이끌었고, 이는 한국을 보복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짚었다. FT는 “국내 정치위기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의 로비에 취약하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