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개헌, 국민이 주체로 서야 가능하다
지난해 12.3내란사태는 이른바 ‘19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19일 새벽의 서부지법 난동은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라는 국가운영의 근간까지 흔들고 말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같은 상황은 우리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키웠다. 내란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가 ‘분권형 개헌’ 목소리라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무엇보다 개헌의 당위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어쩌면 오랜 숙원을 풀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개헌 논의가 추진동력을 얻고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여야 합의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구조로는 어렵다. 우선 개헌 주장이 국민의힘의 국면전환용 의제로 비쳐질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을 중심으로 개헌 필요성이 제기됐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가 불을 지폈고, 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2월 중 협의회발 개헌안을 마련해 국회와 정치권에 제안하기로 했다. 여당도 호응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 직후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추진동력을 얻을 수 없다. 과거 여러차례 진행됐던 개헌 논의가 무산된 것도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최근 논의는 문재인정부 2년차였던 지난 2018년이다. 당시 정부는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논의의 장으로 불러들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란사태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우선돼야 한다.
또 다른 과제는 국민들의 참여 보장이다. 개헌 논의가 추진동력을 얻으려면 정치권을 넘어 국민적 요구가 필수다. 과거 여러차례 개헌 논의가 무산된 것은 국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안하는 ‘헌법개정 국민발안권’ 요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들은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는 것을 전제로 대선과 함께 국민발안제만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한다. 국회의 개헌 요구가 진정성 있게 들리려면 이 같은 주장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여야의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개헌도 가능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시도지사협의회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낼 때 분권형 개헌이 성사될 수 있다. 그렇게 제7공화국의 문이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