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범죄’ 발본색원 가속도
경찰, 234명 성착취 ‘자경단’ 일당 검거 … 법원 ‘지인능욕방’ 운영자 징역 2년 6개월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성착취 등 각종 악질 성범죄자들들이 잇따라 검거·처벌받고 있다. 수사에 폐쇄적으로 대응하던 텔레그램 본사가 경찰청과 수사협조 체제를 구축하면서 범죄 적발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텔레그램-경찰 협조체제 성과 =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159명 등 남녀 234명을 성착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일명 자경단 조직원 14명을 검거하고 이 중 자신을 ‘목사’라 칭하며 총책으로 활동한 A씨를 지난 17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자경단에는 15세 중학생 1명과 고등학생 6명 등 10대 미성년자 11명도 포함됐다. 지인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제공하는 등 범죄에 가담한 73명도 특정, 40명이 검거됐고 1명은 구속 송치됐다.
A씨에게는 범죄단체조직과 청소년성보호법·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19개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전날 A씨를 상대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개최했고 오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할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5월 자경단을 결성해 남성 84명, 여성 154명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만들고 협박과 심리적 지배 등을 통해 성폭행하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중 미성년자는 남성 57명, 여성 102명이다.
피해자 규모만 놓고 보면 2019년 당시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73명)의 3배가 넘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박사방과 N번방 사건 등의 범죄를 연구했으며 범행 대상에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A씨는 SNS에서 일명 ‘지인능욕’에 관심을 보인 남성과 성적 호기심 등을 표현한 여성들에게 접근해 텔레그램으로 신상정보를 확보한 뒤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를 빌미로 1시간마다 일상을 보고하고 반성문을 작성하도록 하는가 하면 “남성과 성관계해야만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10대 피해자 10명을 잔혹하게 성폭행하고는 이를 촬영하기도 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은 조직원은 다른 조직원에게 유사강간 등 성적 학대를 당했다.
2023년 12월부터 시작된 자경단 추적에 탄력이 붙은 것은 텔레그램의 태도 변화였다.
경찰은 텔레그램 운영자에 대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하는 등 압박과 설득 끝에 지난해 9월 범죄 관련 자료를 회신받았고 이달 15일 A씨를 경기 성남시 집에서 검거했다.
A씨는 처음에는 진술을 거부했으나 경찰이 내미는 증거들을 보고 “성적 욕망을 해소하려 했다”며 범행 일체를 시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검사에 따르면 A씨는 반사회적 인격 소유자로 파악됐다.
텔레그램이 한국 경찰의 수사 자료 요청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청은 이를 계기로 지난해 10월 텔레그램과 수사협조체제를 구축하여 범죄 관련 정보를 공식 회신받고 있다.
경찰은 “텔레그램사는 대한민국의 법령과 정책을 준수하며 수사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향후 성착취 등 범죄 척결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텔레그램은 당초 미국·유럽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서만 수사 협조를 해왔지만 지난해 8월 파벨 두로프 CEO가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 마약 밀매 공모 등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 수사협조에 거부한 혐의 등으로 프랑스에서 체포되자 9월부터 정책을 바꿨다.
◆법원, 딥페이크에 “해악 상당” = 지난해 10월 구속됐던 이른바 ‘지인능욕방’ 운영자에 대해서는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1부(박준석 부장판사)는 23일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불법 합성 영상물을 유포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지인능욕방’ 운영자 20대 B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기관에 대한 취업 제한 3년도 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죄는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을 가공해 성적 도구, 희화화 대상으로 삼아 잘못된 성 인식을 확대·재생산하는 등 해악이 상당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다수이고, 상당 기간에 걸쳐 반복돼 이뤄졌으며 피고인은 일부 피해자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며 “디지털 매체 특성상 영상물이 유포되면 삭제가 불가능하고 추가 유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 중 1명과 합의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해 양형 이유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23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지인능욕방 참여자들로부터 피해자들의 사진, 이름 등 개인정보를 받은 뒤 아동·청소년 대상 허위영상물 92개와 성인 대상 허위영상물 1275개를 제작·유포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 됐다. 피해자는 12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