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탄핵사유 추궁,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부인
헌재 ‘윤석열 탄핵심판’ 4차 변론서 증언
국회 병력투입 “봉쇄 아닌 질서 유지”
비상계엄 요건·절차적 정당성 등 신문
‘12.3 내란’ 사태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전 장관은 탄핵소추 사유를 부인하거나 윤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정당한 계엄이었다고 주장했다. 다음 변론부터는 청구인(국회)측이 요청한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어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지시 내용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2시부터 윤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김 전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2시간 넘도록 비상계엄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국무회의 심의 여부 쟁점 = 이날 재판관들은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신문했다. 먼저 이번 탄핵사건의 수명 재판관인 정형식 재판관은 비상계엄 요건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파고 들었다.
정 재판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11명이 모였을 때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구체적 내용과 실체적 요건이 충족됐는지, 비상계엄 시행일시와 지역 그리고 계엄사령관 등에 관련해 이야기했느냐”며 국무회의 심의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시행일시와 지역 등은 계엄선포문에 다 포함된 내용”이라며 “계엄선포문을 개별적으로 나눠주고 알려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계엄선포 요건과 관련해선 “전시 또는 사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 사회질서가 심각하게 교란돼서 행정·사법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김 전 장관은 정 재판관이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그(국무회의) 현장에서 말한 것이냐”고 재차 묻자 “그건 제가 못 들었다”고 했다.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비상계엄은 거대 야당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부정선거 문제 파악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회 투입 병력의 역할도 신문 = 국회에 투입된 병력 문제도 거론됐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신문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여부에 대해 “(국회 본청이 아수라장이 된 만큼 이곳에 들어간) 요원들을 빼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헌법기관인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배경 역시 “국회 봉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려던 것”이라고 했다.
정 재판관은 이와 관련해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면 왜 요원들이 본청에 들어간 것이냐”며 “외부 시민들은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김 전 장관은 “최종적인 건 군 병력이 본청을 확보하고 출입에 대한 통제를 하면서 불필요한 인물은 못 들어오게, 질서정연하게 하려던 것”이라며 “(원래 외부 국회 출입 문에만 배치하려고) 그러려고 했지만 충돌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 들어가서 충돌한 거냐”는 정 재판관의 질의에는 “내부에 불필요한 인원이 있으면 빼내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변론에서 병력 투입은 질서 유지와 상징성 차원이었다고 적극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며, 질서 유지와 상징성 차원에서 군을 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엄 선포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야당 권고는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다”고도 말했다.
‘정치인 체포 지시’를 둘러싼 증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재판관은 김 전 장관의 “체포 지시를 한 적 없다. 계엄포고령을 위반할 개연성이 높은 몇몇을 추려 동태를 파악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증언에 대해 “그런데도 체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체포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 것이 맞느냐”고 추궁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체포를 다룰 수 있는 기구도 구성되지 않았을 때”라며 이를 부인했다.
◆‘비상입법기구 쪽지’ 국회 기능 무력화 시도 여부 = 김형두 재판관은 최상목 당시 부총리에게 건넨 쪽지 문제를 파고들었다. 비상계엄 당일 최 부총리에게 전달된 쪽지에는 보조금과 임금 등 국회에 대한 각종 지원을 끊고,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장관은 “국회 통해서 부당하게 나가는 예산을 색출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비상입법기구 설치에 대해서는 “헌법 제76조에도 나와있지만 긴급재정입법권(긴급재정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을 기획재정부 내에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이 있으면 편성하라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문제의 이 쪽지를 김 전 장관 스스로가 작성했다고 했다.
또 비상계엄 당일 밤 국무회의를 마치자마자 실무진을 통해 쪽지를 최 부총리에게 전했다고 설명했다. 쪽지 작성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는 게 김 전 장관의 입장이다.
김 재판관은 그러나 “국회와 관련한 각종 보조금을 완전 차단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입법은 결국 국회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포고령 1항을 보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고 돼 있다”며 “그래서 기재부 장관에게 준 기재 내용과 포고령 1항을 종합해서 보면 결국 입법 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짚었다. 아울러 “증인이 말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국회 봉쇄가 목표 아니었느냐는 정황이 많이 보인다”고도 했다.
김 재판관의 지적을 종합하면 사실상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즉 내란죄의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취지다. 김 전 장관은 이를 부인하며 “국회의 기본적인 입법활동은 당연히 존중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여러 활동을 빙자해 국가 체제를 문란하게 하는 활동만 제한하려던 것일 뿐, 입법 활동까지 막으려던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비상계엄의 목적 확인 = 이미선 재판관은 김 전 장관이 신문 과정에서 밝힌 비상계엄의 목적을 재확인했다. “거대 야당에게 경종을 울리고 부정선거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결정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부정선거의 증거가 아니라 실체를 파악해서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며 비상계엄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 재판관이 재차 “이런 이유와 목적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인지”를 되물었다. 김 전 장관은 “다만 비상계엄 요건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에게 돌렸다.
이날 4차 변론기일은 헌재 대심판정에서 휴정시간을 포함해 4시간 20여분 간 진행됐다. 김 전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과 증거정리 등이 이뤄졌다.
설 연휴 이후 2월 4일 열리는 5차 변론에선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여인형 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인신문을 한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