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마음의 상처를 줄이려는 준비

2025-02-03 13:00:04 게재

긴 설 연휴 뒤끝 이름깨나 있는 노포 맞은편에 앉은 6명의 대화에 귀가 솔깃했다. 6말7초쯤 되는 신입 노인들의 고교 동창생 모임이었다. 아흔 넘은 부친이 65세 간병인과 살림을 차리겠다고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단다. 또다른 이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3월에 결혼을 하는데 예비며느리 얼굴 한번 본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 검사 초임 발령지가 서울 남부지검이라는 어떤 이의 말에 “경검이야? 출발이 좋다”는 축하와 “윤석열이 날아갔는데…”라는 우려가 갈렸다. 얼굴이 붉어진 한 노인이 “정치얘기는 하지 말자”며 잔을 내려놨고 일행은 서둘러 매운탕을 주문했다.

검사 대통령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재명, 선거 이야기 뒤끝에 간만에 만난 동창들은 다음 모임 잡기도 어색하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아는 것이다.

정치가 금기어가 되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시계는 돌아가고 날선 공격이 최고조에 달하는 선거가 치러질 수 있는데. 미리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하나.

연말 난데없는 대통령의 친위쿠테타를 목도했고 내란 주범격인 대통령이 구속됐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강도의 스트레스와 싸워야 할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예상컨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대선이 펼쳐진다면 여권 후보가 누구든 여권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는 윤석열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나 이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표를 모을 준비를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대한민국은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갖는 국민이 헌법을 근간으로 삼아 선거를 통해 대리인을 뽑고 정부를 운용한다. 법치·선거·언론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요소로 꼽는 이유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체포·구속영장 발부부터 헌재의 탄핵심리까지 ‘못 받아들인다’를 되풀이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대법원이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판결한, 자기들이 출마해 당선된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 언론은 편향됐으니 멀리하고 유튜브를 시청하라고 한다. 조기 대선이 열리더라도 룰이 지배하는 경쟁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를 깨는 전쟁을 벌여서라도 상대를 이겨보겠다는 태도다. 두고두고 독이 될 선택일 것 같다.

국민 신뢰도 31%의 국민의힘이, 탄핵심판 신뢰도 57%의 헌법재판소(한국갤럽 1월 4주. 기관 신뢰도 조사)를 ‘국민 신뢰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공감을 얻겠나. 동원된 극렬지지층이 상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다수를 이기는 반동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 것이다. 조금 덜 피곤한 시간이길 바랄 뿐이다.

백인백색의 세상살이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치가 ‘술자리 마감용’ 안주가 됐다 해도, 그래도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이명환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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