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진 봄 시계…복합위기로 번지는 기후변화

2025-02-03 13:00:07 게재

입춘 한파 기승이지만 2020년대 들어 기온 급격히 상승세 … 다양한 영역에서 연쇄적 영향, 통합적 접근 필요

3일 봄이 온다는 ‘입춘’이다. 봄을 시샘하듯 입춘 한파가 기승을 부리지만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대한민국 봄철(3~5월) 기온은 상승 중이다. 3일 기상청의 1973~2024년 봄철 기온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봄철 기온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2020년대 들어 급격히 올라갔다. 봄철 평균 기온 상위 10위 중 90%가 최근 10년 내에 해당했다. 1998년을 제외하면 봄철 평균 기온 상위 10위를 기록한 해는 모두 2014년 이후다.

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연쇄적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수많은 생물학적 활동(페놀로지)은 물론 경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우리가 손쉽게 체감할 수 있는 현상이 바로 개화다. 기상청의 서울 벚꽃 개화 자료(1922~2024년)에 따르면 개화일이 점점 앞당겨지는 추세다. 1920~1950년대는 4월 중순~하순에 꽃이 피었다면 1960~1990년대에는 4월 초~중순으로 빨라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3월 말~4월 초에 벚꽃이 피었고 특히 2014년 이후 3월 말 개화가 더 자주 관찰되는 추세다.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곳곳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빙하호가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대규모 홍수 피해부터 숨겨진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경제적 갈등까지 다양하다. 사진은 3D 프린터로 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니어처와 그린란드 지도를 함께 찍은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광주기 변화가 몰고 오는 생물학적 혼란 = 이렇게 꽃이 피는 시기가 앞당겨지는 등 생물학적 활동이 달라지면 생물이 경험하는 낮의 길이(광주기)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광주기는 일반적으로 계절적 생물학적 반응의 트리거로 작용한다. 즉, 개화나 발아 등 중요한 생명 활동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사실 광주기는 지구 자전이나 공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크지는 않다(물론 온난화로 극지방 빙하에서 녹은 물이 적도로 이동해 지구 질량 분포가 달라져 지구 시간축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온난화로 개화나 발아 등의 시기가 빨라지면 생물은 종전보다 더 짧은 낮 길이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생물 생장이나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 학술지 ‘뉴 파이톨로지스트(New Phytologist)’의 논문 ‘기후변화에 따른 광주기의 시·공간적 변화(Spatial and temporal shifts in photoperiod with climate change)’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계절성 변화(시간적 이동)가 서식지 이동(공간적 이동)보다 식물이 경험하는 광주기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위도 45°에 있는 나무가 4월 2일에 발아하면 광주기는 12시간 48분이다. 만약 10년당 3일씩, 100년 동안 30일로 발아시기가 빨라지면 광주기는 11시간 12분으로 1시간 36분이 줄어든다. 이는 나무가 있는 위치가 위도 28.5°상승한 것과 동일한 효과다. 동일한 나무가 100년 동안 위도 0.5°(약 60㎞) 북상할 경우 같은 날짜에 경험하는 광주기 차이는 1분 미만으로 분석됐다.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광주기의 시·공간적 변화’에서 분석한 연구들의 상당수가 실험실에서의 광주기 조작이 실제 기후변화로 인한 변화보다 더 극단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많은 종에서 광주기가 어떻게 신호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추후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광주기의 시·공간적 변화’에서는 “기후변화 예측을 위해 광주기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모델링 접근 방식과 경험적 연구를 결합하면 미래의 시공간적 변화에 대한 이해와 예측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입춘을 하루 앞둔 2일 강원 강릉시 홍제동의 한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다.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21세기 후반 33조달러 손실 가능성 = 지구 온난화로 인한 변화는 생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클 수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의 논문 ‘기후변화 상황에서 엘니뇨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비선형적 영향(Nonlinear El Nino impacts on the global economy under climate change)’에 따르면, 1997~1998년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전세계 경제적 손실 규모는 약 2조1000억달러로 추정된다. 또한 2015~2016년에는 엘니뇨로 약 3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일어났다고 분석됐다.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평균한 해수면온도 편차가 +0.5℃ 이상으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의 시작으로 본다. 바닷물 온도가 평년(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보다 2℃ 이상 높은 기간이 적어도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를 슈퍼 엘니뇨라고 한다. 1997~1998년, 2015~2016년에 발생한 엘니뇨가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엘니뇨-남방 진동(ENSO)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경제적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엘니뇨-남방 진동은 ‘중립-엘니뇨-라니냐’ 등의 3단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기상 현상이다. 이는 태평양 해수면 온도 변화가 전지구적 기후 양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농작물 수확량부터 자연재해 발생까지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한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한 경우를 가정한 고배출 시나리오(SSP5-8.5)를 적용해 21세기 후반 추가적인 경제 손실을 분석한 결과, 33조달러 규모로 예측됐다. 경제적 손실 규모는 저개발국가와 농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 커졌다.

이는 전세계 181개국의 1960~2019년 경제 자료들을 토대로 엘니뇨 발생 시 각국의 경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한 결과다. 각 나라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엘니뇨 영향만을 찾아내기 위해 ‘고정효과 패널회귀모형’이라는 통계 방법 등을 사용했다. 또한 미래 경제 손실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 기후모델 ‘CMIP6’ 등을 활용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빙하호 붕괴, 국경 없는 복합 재난 심화 = 지구 온난화로 인한 변화는 대기 해양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다. 또한 분절적이고 단편적인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연쇄적이며 유기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그 규모도 커질 수 있다.

한 예로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빙하를 들 수 있다. 북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는 영토 대부분이 빙하로 덮여 있는 거대한 얼음 땅이다. 하지만 최근 빙하가 녹으면서 몸값이 수직 상승 중이다. 미국과 유럽 간 최단거리 해상 운송로와 희토류 등 천연자원 확보 등 미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임기 시절에 이어 이번에도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혔다.

빙하가 녹으면서 숨어 있던 미래 자원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복합 재난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의 논문 ‘기후변화에 따른 제3극 지역의 빙하호 붕괴 위험 증가 전망(Increasing risk of glacial lake outburst floods from future Third Pole deglaciation)’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 등지에 있는 빙하 감소로 2100년까지 새로운 빙하호 약 1만3000개가 형성될 전망이다.

이는 빙하호 붕괴 홍수(GLOF) 위험을 최대 3배까지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빙하호 붕괴 홍수 위험은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 간 위험 관리 체계가 시급하다고 분석됐다.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 등지는 북극과 남극에 이어 지구상에서 3번째로 큰 빙하지역이라는 의미로 제3극으로 불린다.

실제로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의 논문 ‘2023년 시킴 빙하호 붕괴 홍수: 복합재난의 발생 기제와 영향 분석(The Sikkim flood of October 2023: Drivers, causes and impacts of a multihazard cascade)’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인도 시킴 히말라야의 사우스 로낙(South Lhonak) 호수에서 일어난 빙하호 붕괴 홍수 영향은 방글라데시까지 미쳤다. 호수 옆쪽의 얼어붙은 흙과 돌(빙퇴석) 1470만㎥가 무너지면서 약 20m(6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발생했다. 이 파도가 호수를 막고 있던 빙퇴석을 무너뜨리면서 물 5000만㎥(올림픽 규격 수영장 2만개 분량의 물이 한꺼번에 흘러나온 양과 비슷)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쏟아져 나온 물이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주변 흙과 돌을 쓸어갔고 퇴적물 2억7000만㎥(88층 높이 아파트(가로 30m×세로 40m×층고 3m) 850동을 채울 수 있는 양)이 침식됐다. 이 엄청난 양의 물과 퇴적물이 강을 따라 내려가며 수력발전소와 주변 시설들을 파괴해 피해 규모는 더 커졌다.

결국 분절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합적인 관점으로 현실을 함께 타개하는 전략이다. 물론 현실 부정과 이기심의 조합이 빚어낸 환상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