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개헌 카드’ 소환된 이유
계엄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의식 공감
문제는 시기 … 국면 유지 vs 전환 ‘입장차’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정국 주도권 장악을 위한 카드로 ‘개헌’ 이슈가 소환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며 개헌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논의 시기를 두고는 입장이 갈린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신에게 유리한 정국 조성을 위해 타이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 국면을 타개하려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계산이 다르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개헌 논의에 군불을 때는 것에 대해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입장에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일종의 정치 공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조기 대선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개헌”이라며 “87년 헌법 체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 분권형 정치체제로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개헌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 안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한 인사권·예산권·정부 입법권·감사권 분산 등을 제안했다.
오는 6일에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국가 대개조를 위한 개헌 토론회’가 열리고 13일에는 같은 당 김재섭·김소희 의원이 ‘제7공화국으로 가는 길,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개헌 토론회를 연다. 성 의원은 “87년 체제 이후 40년 가깝게 유지돼 온 대통령 단임제에 대한 개편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며 토론회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
현 국면 타개가 절실한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국회 차원의 개헌특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으며, 우선 이달 중으로 당내에 개헌특위를 발족할 예정이다.
개헌 논의가 여당에서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를 견제하는 야권 잠룡들도 변화와 쇄신의 카드로 개헌을 꺼내들고 있으며 정치 원로들도 개헌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야권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달 1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출범해야 한다”며 “지난 21대 대선 당시 후보로서 분권형 4년 중임제 대통령제와 함께 책임총리제를 골자로 한 개헌 등 ‘권력구조 개편’과 ‘정치 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고 밝혔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4일 페이스북에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이번 탄핵의 종착지는 이 땅에 그런 내란과 계엄이 다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쓰며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개헌에 대해 민주당이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면서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개헌 추진에 앞장서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박광온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 비명계 전·현직 의원들도 싱크탱크 ‘일곱번째나라LAB’을 출범하고 개헌 논의 흐름에 합류한 상황이다.
3일 열린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모임’에서도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로의 개헌을 여야에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개헌 이슈가 조금씩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는 게 제 생각”이라고 언급해 당장은 개헌 논의를 시작할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일 광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며 “개헌보다 정권 교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