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치닫는 경찰 체포조 논란
검찰 공소장 ‘요청 받은 국수본이 영등포서에 지시 … 사복 착용도 강조’
국수본 “가담 아닌 길 안내 차원 … 체포할 땐 형사조끼 입고 수갑 챙겨”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국회 체포조를 구성하기 위해 일선 경찰서에 형사 파견을 요청하며 “경찰임이 티 나지 않게 사복으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경찰이 “체포조 가담이 아닌 길 안내 차원이었다”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진실공방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3일 국수본은 “사복으로 보내라는 의미는 체포조 가담이 아니라 ‘길 안내’ 등 지원을 하는 차원”이라며 “통상 체포를 하러 갈 때 형사들은 경찰이라는 표시가 된 형사 조끼를 착용하고 수갑과 장구를 챙겨서 가고 있는 점과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국수본은 또 “당시 방첩사로부터 현장안내 인력 5명을 지원요청 받아, 수사기획조정관이 경찰청장에게 위와 같은 내용을 보고하니 ‘사복으로 보내세요’라고 지시해 이를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에게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공소장에 ‘경찰청장까지 보고’ 정황 포함 = 앞서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국수본이 ‘반국가세력 합동 체포조’ 편성에 가담한 정황을 포함시켰다.
이에 따르면 검찰은 이현일 국수본 수사기획계장이 계엄 당일 오후 11시32분쯤 구인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으로부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체포할 목적으로 경찰 100명과 호송차 20대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계장은 이를 전창훈 수사기획담당관과 윤승영 수사기획조정관에게 보고했다고 파악했다.
이에 전 담당관은 김경규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에게 전화해 ‘군과 합동수사본부를 차려야 하는데 국수본 자체적으로 인원이 안 되니 서울청 차원에서 수사관 100명, 차량 20대를 지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를 보고받은 임경우 서울청 수사부장은 광역수사단 수사대장 등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각 대별로 언제든 수사에 투입할 수 있도록 경감 이하 실 수사 인력 20명씩 명단을 정리하고 사무실에 대기시켜달라”고 지시했다.
임 부장은 12월 4일 오전 1시 26분쯤 총 104명이 기재된 ‘광역수사단 경감 이하 비상대기자 현황’을 보고받았다. 임 부장은 이 중 81명을 사무실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또 윤 조정관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방첩사의 수사관·차량 지원 요청을 전하면서 ‘국회 주변 수사나 체포 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 한동훈 체포조 5명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고 보고했다.
이후 윤 조정관이 이 계장에게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됐으니 방첩사에 명단을 보내주라’고 지시했다.
이 계장은 이에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에게 4회에 걸쳐 전화를 걸어 “방첩사에서 국회에 체포조를 보낼 건데, 인솔하고 같이 움직여야 될 형사들이 필요하다”며 “경찰인거 티나지 않게 사복으로 보내고 5명의 이름,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계장은 이후 ‘추가로 5명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 형사과장으로부터 경찰관 총 10명의 명단을 전달받았다. 명단은 2차례에 걸쳐 방첩사측에 문자로 전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계장은 또 전 담당관과 윤 조정관이 들어있는 단체 대화방에도 ‘방첩사에서 추가로 요청한 인원에 대해서도 영등포서를 통해 명단 확보 중’이라는 글을 게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명·한동훈 이름 못 들어” = 그동안 체포조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경찰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달 16일 국회 등을 통해 공개된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공소장에도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수본이 체포 대상 정치인 명단을 방첩사로부터 전달받은 정황이 담겼다.
당시에도 경찰은 ‘검찰이 방첩사 진술만 채택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었다.
이날 국수본은 언론 공지를 통해 “수사기획계장은 방첩사로부터 이재명·한동훈 대표 이름을 들은 사실이 없다”며 “검찰이 방첩사의 진술만을 채택해 작성한 공소장 내용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계엄 당일 현장에 파견한 영등포경찰서 형사 10명에 대해서도 “해당 형사들은 누군가를 체포한다는 인식이 없었으며 수갑도 소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방첩사 인력도 만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회 수소차 충전소 앞에 영등포서 형사 60여명이 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국회 담장이 무너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간 것이었다고도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했던 한 형사는 검찰 조사에서 ‘무슨 일로 간지도 모르고, 누구를 체포하라 했으면 왜 그러냐고 따졌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증거없는 방첩사측 일방적 진술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관련자들 피의자 전환 = 한편 검찰은 체포조 논란 관련 국수본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강도도 높여가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지난달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수본 관계자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구속 기소된 조 청장과 김 전 서울청장 외에 정치인 체포조 운용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에도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실, 영등포경찰서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특수본은 우종수 국수본부장 등 관계자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특수본은 또 윤 조정관과 전 담당관, 이 계장 등 일부 국수본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