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도의원들의 ‘불장난’, 대통령의 ‘불장난’

2025-02-05 13:00:04 게재

지난해 11월 18일 오후 경북 상주시의 논두렁에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119상황실에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대형펌프차 2대를 출동시켜 지푸라기 등에 붙은 불을 바로 진화했다. 그런데 화재현장에는 경북도의회 도의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건설소방위원회 소속 도의원들이 일부러 짚단 등에 불을 질러 화재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당국의 출동태세를 점검하기 위해서 ‘불장난’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신나간 지방의원들의 어이없는 갑질 행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 시민단체는 경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 소속 위원 10명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방화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야당에 경각심을 주기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일 그날 온 국민을 뜬눈으로 밤을 새게 해놓고 태연하게 ‘경고용’으로 한번 해봤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말하자면 도의원들이 ‘불장난’하듯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식이다.

집권 2년 6개월여 동안 이상한 점이 적지 않았지만 그의 상황인식과 판단수준이 그 정도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계엄선포 후 오락가락 언행 정도는 자기보호본능의 작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26년 검찰 생활 동안 항상 ‘갑의 갑’위치에서 남의 과거를 뒤져 기소만 해오던 그가 구속기소 된 데다 자칫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최고 사형까지 처할 처지로 몰렸으니 당황해서 하는 얘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고용 계엄’이라는 주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도 안된다.

내란사태 후 TK의 실망은 어느 지역보다 더 크다. 윤 대통령은 대구경북의 압도적인 지지로 정계입문 8개월 만에 벼락 대통령자리에 올랐다. 그는 TK에서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71만표 이상 앞섰다. 최종 득표수 차이는 24만7077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TK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재명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TK 민심 밑바닥에는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은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지지는 철회되는 분위기다. 물론 정파적이고 의도적인 목적을 가진 일부 극우 세력은 예외다.

TK의 한 중진급 정치인은 “(윤 대통령이) 평소 야당에 대한 불만을 원색적으로 토로하며 술자리 등에서 종종 ‘뭐라도 해야 되겠다’고 했는데 그게 비상계엄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지금도 인정하기 싫은 가짜뉴스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지지층도 “TK가 민주당 후보가 싫어 3개월짜리 당원 윤석열을 찍었는데 대선 경선 때 차라리 홍준표를 밀었다면 최소한 비상계엄과 같은 대형사고는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하고 있다.

TK는 그래서 다시 한번 그에게 묻는다. 비상계엄선포가 ‘불장난’인가?

최세호 자치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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