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결정 아닌 갈등 야기할 수 있는 다수결 원칙
공공갈등은 법령의 제개정, 각종 사업 등 공공정책을 수립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의미한다. 공공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대응방식이 갈등관리다.
다수결은 민주주의 운영과 의사결정의 핵심 원칙이다.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집단적 의사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투표를 통해 50% 이상 지지하게 되면 선택되는 것이다. 다수란 반드시 절반 이상을 넘어서는 것만은 아니다. 순위별 최다 득표로 정해지기도 하고 전체 2/3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회적 대립을 최소화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합리적인 결정방식은 무엇인가? 무엇이 결정된다는 것은 적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승복한다는 의미다. 물론 의사결정의 원칙과 절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다. 대다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적 선호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다수결이 활용된다.
아렌드 레이프하트(Arend Lijphart)는 민주주의 유형으로 합의제(Consensus Democracy)와 다수결형(Majoritarian Democracy)으로 구분했다. 다수결형은 승자 독식(Winner-Takes-All)의 방식으로 투표에 이긴 자가 직위의 모든 권한을 독점한다. 조직을 단독으로 운영하며 정책결정이 매우 신속하다. 책임 소재 또한 명확하다.
‘다수가 옳다’는 것은 착각일 수도
갈등관리의 차원에서 다수결은 반드시 합리적이고 타당한 의사결정인가? 다수결로 판단된 쟁점이 더 이상 사회적 대립과 혼란을 불러오지 않는가? 서로 대립된 선호들을 어떻게 통합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
이를 조율해 나가는 것이 갈등관리의 본질이다. 리처드 서스킨드(Richard Susskind)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다수가 옳다는 착각’이라는 저서에서 다수결 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민주주의가 반드시 다수결에 의존해야 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혐오시설의 유치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다. 심각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충돌의 양상은 매우 팽팽하다. 찬성과 반대가 거의 호각지세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종국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다수결의 방식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찬반 단체들은 주민투표에 승리하기 위해 투표일까지 다수파를 구성하는 심대한 운동에 돌입한다. 설득력 있는 논리와 증거를 찾고 필요에 따라 대규모 시위나 간담회를 통해 유리한 언론·대민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양측 감정의 골은 더욱 커지고 갈등 강도는 심각해진다.
주민투표의 날이 다가왔다. 유치냐, 반대냐로 더 많은 표를 얻은 한편이 결국 승리했다. 다수결로 결과가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마을에서 논란이 되지 않고 완전히 해소되었는가? 대립으로 발생한 주민들 간의 서먹한 관계는 치유되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는가?
다수결이 갈등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 발생할 경우 한표라도 적은 집단의 의견들은 배제된다. 소수자의 권리와 의견이 무시될수록 감정적 분노와 불신이 심화된다. 여론조작 선동 감정 등으로 대중들은 정보와 숙고에 기반한 판단보다는 상황에 휩쓸려 갈 수도 있다. SNS와 미디어를 통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화되고 객관적 진실보다는 감정적 선동으로 여론이 결정되기도 한다. 갈등관리를 위해서는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결 결점, 합의제 민주주의로 보완 필요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정도에 따라 합의 수준이 달라진다. 50~59%까지가 다수(Majority), 60~79%까지가 컨센서스(Consensus), 80% 이상이 사실상 만장일치(Virtual Unanimity)다.(Kullberg & Zimmerman, 1999)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반을 겨우 넘는 수치가 아니라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단순한 다수결보다 전문가의 의견과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를 단순한 찬반 논리로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전문지식을 토대로 한 합리적인 분석, 증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다수결에 의존하지만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국민을 극단적으로 양분시킬 위험성도 있다. 복수의 집단들이 방향을 조율하고 협의를 통해 서로 간의 선호를 전환시키는 노력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숙의, 객관적인 정보, 합리적인 공론화의 합의제 민주주의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