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확인사살’ 노상원 수첩 실행 정황

2025-02-17 13:00:35 게재

정보사에 “사격·폭파 요원 추천” 요청

작성 경위 등 추가 수사 불가피 관측

‘12.3 내란’ 사태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수첩 내용 중 일부가 실제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수첩 내용 작성 과정에서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관여했는지 등 추가적인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수사 결과 ‘12.3 계엄’ 당시 방첩사령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조를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노상원 수첩에도 수집·수거 대상이 적혀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에 따르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등에게 전달된 체포 명단에는 이 대표와 조 전 대표 뿐 아니라 민주당 정청래 의원,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 10명이 넘는 인사들이 포함됐는데 노상원 수첩에 있던 명단과 대부분 일치했다.

노상원 수첩에는 이들 외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이준석 개혁신당,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더 많은 인사들이 ‘수거 대상’으로 적혀 있었다. 계엄 선포 직후 우선 1차 대상을 체포한 뒤 계엄 기간 동안 대대적인 체포 작전에 나서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첩에는 또 수거 작전에 ‘경찰 활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검찰 수사 결과 실제 방첩사가 체포조를 운영하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원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첩에는 수거 대상의 처리 방법도 등장한다. 노 전 사령관은 수첩에 ‘민간 대형 선박’ ‘폐군함’ ‘연평도 등 무인도 이송’ ‘실미도에서 집행 인원 하차’ ‘적절한 곳에서 폭파’ ‘시한폭탄 활용’ 등을 적었다. 수거 대상을 무인도로 옮긴 뒤 폭탄 등을 이용해 살해하려 한 것으로 읽힌다. 수첩에는 ‘막사 내 잠자리 폭발물 사용’ ‘확인사살 필요’ 등 민통선 이북에서 수거 대상을 사살하는 방안도 담겼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은 이같은 계획을 집행하는 주체로 ‘특수요원’을 언급했는데 검찰 조사에서 그가 사격과 폭파 능력이 뛰어난 정보사 요원을 선발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봉규 정보사 대령은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 전화해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인원 중 7~8명을 추천해 달라’ ‘특수부대 요원으로 5명, 우회공작 인원으로 15명 정도를 선발하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비상계엄 당일 무술이 뛰어난 북파공작원부대(HID)요원 5명이 경기도 성남 판교 정보사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여의도 매복 점령’ ‘진입로 봉쇄’ ‘울타리 방호’ 등 수첩에 담긴 국회 봉쇄 방안도 실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결과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는 678명의 무장군인과 1768명의 경찰이 투입돼 국회 출입을 막았다. 수첩에는 여의도 봉쇄에 수도방위사령부를 활용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계엄 선포 직후 국회 통제를 위해 수방사 인력이 투입된 것과 일치한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 노 전 사령관을 체포하며 이 수첩을 확보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달 10일 노 전 사령관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수첩과 관련된 내용은 공소장에 담지 않았다. 작성자와 작성일자가 불분명하고 수첩에 담긴 내용이 파편적인 단어의 나열로 돼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경찰 의뢰로 이 수첩을 작성한 게 노 전 사령관이 맞는지 필적 감정을 했으나 ‘감정 불능’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수첩 내용 중 일부가 실행으로 이어진 만큼 언제부터 누구 지시로 작성이 됐는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등 조사가 필요하지만 노 전 사령관이 일체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 검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진술을 거부하고 있지만 수첩 내용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는지, 실행된 부분이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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