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북극쇄빙연구선 건조 제자리…북극시대 낙오 우려

2025-02-21 13:00:04 게재

‘2026년 완공' 3년 늦췄지만 발주도 못해

같이 시작한 일본은 올해 진수식, 내년 인도

미-러, 우크라 종전 협상장서 북극협력 타진

기후와 지정학의 변화로 북극시대가 빠르게 열리고 있지만 정부는 2026년까지 완공하겠다던 북극용 쇄빙연구선을 제작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오히려 사업완료기간을 2029년으로 3년 늦췄다.

같은 시기 북극용 쇄빙연구선 계획을 세운 일본은 예정대로 선박을 건조, 올해 진수식을 거쳐 내년 11월 완공하는 일정을 그대로 진행 중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쇄빙선을 건조한 경험을 갖고 있고, 중형조선소 HJ중공업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한 이력을 갖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에게 쇄빙연구선을 만들어 달라고 발주도 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정부가 국내 산업역량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북극을 둘러싼 변화는 가속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장에서 북극에너지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하며 북극발 지정학 변화를 예고했다.

●북극에 앞서가는 일본, 뒤처지는 한국 = 해양수산부는 2021년 북극 전용 차세대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겠다며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2023년 기본설계도 완성했지만 계획은 쇄빙연구선을 건조할 조선소를 찾는 단계에서 멈췄다. 정부가 책정한 예산으로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겠다고 나서는 조선사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1년 북극전용 쇄빙연구선 건조작업에 착수했지만 기본설계 이후 멈췄다. 정부가 책정한 사업예산으로 선박을 건조하겠다는 조선소가 없다. 사진은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연구하는 아라온호. 지난해 북극해 연구에 투입한 시간은 35일에 그쳤다. 사진 극지연구소 제공

해수부가 남극 북극을 오가며 연구활동하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더해 북극전용 쇄빙연구선을 보유하려 한 것은 북극시대를 대비한 최소한의 대비였다.

아라온호 1대로는 극지에 대한 연구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고,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극지 각축전에서 뒤쳐져 발언권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해 80도 이상 해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아라온호가 지난해 북극에서 연구활동을 수행한 일수는 35일에 그쳤다.

북극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1987년 옛 소련의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라 북극권을 개방하고 북극평화지역을 설립하기 위해 무르만스크선언을 발표하며 고조됐다. 이후 러시아는 1991년 북극해항로에 관한 규칙을 공포해 기후·군사전략적 이유로 폐쇄됐던 북극해항로를 러시아 이외 국가에도 개방했다.

국제사회도 즉각 호응했다. 1993년 노르웨이와 일본은 러시아와 함께 북극해항로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북극해항로 계획’(INSROP)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북극해와 접한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 8개국이 북극이사회를 구성했다. 북극이사회는 북극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보호 등 공동문제를 북극권 원주민 공동체의 참여 아래 협력하기 위한 기구다.

우리나라는 2002년 북극과학위원회에 가입,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노르웨이 스발바르군도 니알슨에 북극다산과학기지를 설치하고 북극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4년에는 앞선 조선기술을 활용해 극지연구를 위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제작에 착수, 2009년 진수하고 취항했다. 아라온호는 중형조선소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기본설계와 건조를 맡았다.

한국은 북극 연안에 접하지 않았지만 2013년 옵서버 국가로 북극이사회에 참여권도 얻었다. 이명박정부에서 해체된 해수부가 박근혜정부 출범 후 부활하면서 거둔 성과였다. 옵서버국가는 한국을 포함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중국 이탈리아 일본 인도 싱가포르 스위스 등 13개국이다.

한국은 옵서버 국가로서 북극이사회 6개 워킹그룹 중 5개 그룹에 참여하는 등 과학적 활동에 집중하며 북극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한 발언권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제2쇄빙선 건조가 표류하면서 그동안 축적한 정부의 노력이 빛바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일본은 앞서 나가고 있다. 일본은 북극 개방 이후 러시아와 손잡고 북극해항로 개발에 처음 나선 국가 중 하나다.

일본도 노후 쇄빙연구선을 보완하고 북극해 연구에 집중할 차세대 쇄빙연구선을 마련하기로 하고 2021년 관련 계획을 세운 후 건조에 착수, 올해 3월 진수식을 거쳐 내년 11월 완공할 예정이다.

일본의 차세대 쇄빙연구선 ‘미라이Ⅱ’는 길이 128m, 총톤수 1만3000톤으로 한국의 차세대 쇄빙선보다 작은 규모다. 쇄빙능력도 1.2m로 1.5m로 설계한 한국 차세대 쇄빙선보다 약하다. 이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339억엔(약 3250억원)이다.

한국정부는 일본 차세대 쇄빙연구선보다 더 크고 쇄빙능력도 뛰어난 선박을 일본보다 500억원 적은 2765억원에 만들겠다고 예산을 책정했다. 쇄빙선 건조능력을 갖춘 한국의 조선소가 정부 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2회에 걸쳐 다섯차례 진행된 정부 입찰이 무산된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쇄빙선 건조사업의 사업기간이 3년 연장되긴 했지만 선박건조사들이 쇄빙선 건조사업의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할 경우 응찰하는 업체가 없거나 적어서 건조사 선정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라온호를 운영하고 있는 극지연구소는 쇄빙연구선 실시설계와 건조기간을 고려할 때 올해 안에 발주하지 못하면 2029년으로 연장한 사업기한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러 북극협력, 세계 질서 흔들 변수 =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북극을 둘러싼 지정학은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장에서 북극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러시아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아나전 종전을 위한 고위급 협상을 하며 북극협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에 참여한 러시아 국부펀드 키릴 드미트리예프(가운데) 대표가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북극해를 둘러싼 8개 연안국 중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진 러시아와 알래스카를 기반으로 캐나다 그린란드(덴마크 자치령)까지 탐내며 북극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미국이 북극해를 둘러싸고 패권다툼 대신 협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 우방을 흔들고 적성국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움직임이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러-우 종전을 위한 미국과 러시아 고위급 회담은 시작됐다. 회담에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일어난 유럽 대륙의 유럽연합 회원국은 회담에 참여하지 못했다.

종전을 위한 협상에서 미·러 양국은 우크라이나와 관련 없는 북극에 대한 논의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전문 미디어 폴리티코와 노르웨이 하이노스뉴스에 따르면 이날 국영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을 이끄는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그것은 일반적 논의에 가까웠고 북극에서의 공동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며 “우리는 구체적으로 북극에 대해 논의했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드미트리예프는 러시아 외무장관과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 보좌관이 포함된 러시아 대표단의 일원으로 종전 협상에 대한 초기 논의를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다.

미국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고,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동행했다.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은 지난해 미 의회의 초당적인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주도한 전략가들이다.

미국의 신해양전략을 담은 의회 지침서는 중국에 뒤쳐진 미국의 해운·조선 경쟁력을 강화하고 북극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채택했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북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진행한 간략한 역사를 정리했다. 미국 석유메이저 엑손모빌은 러시아 국영 석유메이저 로스네프트와 손잡고 북극에서 탄화수소를 탐사하려 했지만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에서 제재를 가하자 2018년 철수했다.

드미트리예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모든 소통을 파괴하고 모든 논의를 파괴한 후 열린 회담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담의 경제적 방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좋았다고 말했지만 정치적 논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매입하는 방안까지 꺼내며 북극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며 “막대한 광물 자원과 전략적 요충지를 가진 그린란드를 장악하기 위해 군사력이나 경제적 강압을 사용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은 유럽과 북미지역에 포진한 나머지 6개 북극해 연안국과 북극인접국을 자처하며 북극해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와 손잡고 북극에 대한 진출을 모색하는 인도 등을 자극하며 세계 지정학적 질서를 흔들 수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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