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요양시설 대기자 1만8241명
대기인원 3000명 넘어선 자치구도
시설 적은 강남권, 대기수요는 최다
인구 급증, 시설 획기적으로 늘려야

26일 내일신문 취재 결과 서울에서 요양시설 입소를 기다리는 노인 수가 2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파악이 가능한 지난해말 기준 대기자는 1만8241명이었고 통계상 두달 사이 1500여명이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세부 지표를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송파구는 지난해말 기준 대기자가 3424명이고 서초구도 2214명이 대기 중이다. 강북권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강북구는 360명이 입소를 신청했지만 들어가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요양시설 대기 수요는 노인인구 수와 대체로 일치한다. 인구 대비 노인비중이 높은 마포구는 1699명, 용산구는 1092명이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인구가 9만7788명인 은평구는 580명이 시설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노인 수·대기자 일치하지 않아 =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인구 비중이 요양시설 대기자 수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시설 보유 유무에 따라 대기자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도봉구가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노인인구 비중이 두번째로 높은 곳이지만 대기자 수는 12명에 불과했다. 강서구도 노인인구 비중이 19.4%로 높은 편이지만 대기자 수는 18명에 불과하다.
노인시설을 늘리려면 땅과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빈땅을 찾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기여가 노인시설 확보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용적률 상향 등 재건축 과정에서 얻은 혜택을 노인시설을 짓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대응을 위한 시민 인식 전환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은 노인시설을 공공기여로 제공하지 않겠다며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 단지들은 노인시설을 ‘노치원’이라 부르며 기피시설로 취급한다.
◆정부·민간, 고령화 대응 함께 나서야 = 공공기여를 활성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노인시설 입소는 주거지 제한을 둘 수 없다. A 아파트 단지가 공공기여로 제공한 시설이지만 A단지 주민들에게 입소 우선권을 줄 수 없다는 얘기다. 시 관계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요양을 받을 수 있다면 노인시설 확보가 훨씬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각지대 해소도 과제다. 시설 입소는 장기요양보호법상 장애 혹은 질병등급이 높아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등급이 없어도 시설 입소가 가능하지만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노후자금이 여유로운 노인은 등급이 없어도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만 빈곤한 노인들은 사실상 시설 입소가 불가능하다. 복지업계 관계자는 “건강이 매우 안 좋아 등급이 있으면 그나마 입소가 빠른 편"이라며 "중증은 아니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강남 3구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노인인구 비중이 타 구에 비해 높지 않지만 대기자 수는 서울 전체에서 가장 많다. 시설이 동네에 들어오는 건 반대하면서 타 지역 요양원 입소는 희망하는 이른바 ‘얌체 수요’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강남권 대규모 단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시설 설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견진만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을 견인하고 있고 주된 원인은 경제적 요인”이라며 “노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인시설 확보가 정부와 지자체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견 교수는 이어 “특히 우리나라는 노인인구의 40% 이상이 빈곤층”이라며 “이를 타개하려면 시설 확보와 함께 극빈층 노인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립 비용 지원 등 실효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