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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직, 더 이상 정치적 전리품이 되어선 안된다

2025-02-27 13:00:51 게재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동시에 구속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동네 치안은 어떻게 되나?’ ‘순찰, 민생사건 대응, 수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경찰의 수사권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범죄가 기승을 부리거나 외국에서처럼 폭동이나 약탈도 발생하지 않았다. 여느 일상처럼 경찰조직은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이러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2020년 경찰법 개정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정 경찰법은 경찰의 지휘라인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기존의 경찰청장 1인 체제를 없앴다. 경찰청장은 국가경찰 사무만 관장하도록 했고, 광역자치단체 중심의 자치경찰제와 국가수사본부장 중심의 경찰수사라는 삼원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덕분에 이번처럼 중앙정부가 위태롭거나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지방정부의 자치경찰위원회는 동요하지 않고 범죄예방과 질서유지에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광역자치단체마다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 2기를 출범시키며 자치경찰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34년의 지방자치와 4년의 자치경찰제의 저력이자 과감한 제도 전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청장 임명 절차 공정성 투명성 높여야

차제에 주요 경찰지휘부의 동시 구속이라는 상황을 초래한 원인인 경찰 총수의 임명 관행을 성찰해야 한다. 경찰청장 임명은 정치권력의 전리품이 아니다. 이는 경찰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어야 한다. 경찰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제복 입은 조직으로, 최고 책임자 임명은 경찰에 대한 신뢰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경찰청장 인선은 국가경찰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행정안전부장관이 제청하고,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비상계엄 사건을 겪으며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다소 의외겠지만 경찰청장 후보군에 드는 고위직 경찰관 가운데 청장직 낙점을 내심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배’라고 여기는 것이다. 직무에 따른 막중한 책임 외에도 경찰조직 안팎에서의 정치적 압박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지호 청장도 건강상 이유로 여러차례 청장 인사를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경찰청장 임명 과정이 과연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여태껏 경찰청장 임명에는 일종의 뿌리깊은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과의 친분이나 정치적 배경에 의해 고위직 경찰 인사들이 고속승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폐습은 경찰청장이 공정하게 선출되는 것을 방해하고 경찰조직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임명권자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인해 불법적 명령에 동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사난맥은 경찰의 효율적인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신뢰와도 멀어지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경찰청장 임명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가 시급하다. 현행법상 경찰청장 추천권은 국가경찰위원회가 가지고 있으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추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해 외부의 부당한 인사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14만 경찰과 국민 눈높이 맞는 인사를

이제 경찰 조직은 삼두마차처럼 분권된 지휘구조를 갖추었지만 경찰청장직은 여전히 막중한 권한을 행사하고 또한 큰 책임을 지는 자리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찰지휘부에 대한 인사 제도와 관행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경찰청장뿐만 아니라 시도경찰청장 임명 과정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경찰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자치경찰위원회가 협의·추천한 후보자를 임용하는 등 14만 현장경찰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올해도 많은 젊은이들이 큰 꿈을 안고 경찰이 되었다. 이들이 초심을 간직한 채 그토록 바라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열정을 다할 수 있도록, 그들이 진심으로 따르고자 원하는 참된 경찰을 리더로 임명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 전 한국경찰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