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80년, 일본경제 부활과 쇠퇴 갈림길
전후 10년 만에 ‘번영의 30년’ 시작 … 버블 붕괴후 ‘잃어버린 30년’ 악몽
올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일본언론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패전 80년을 맞아 올해 8월 담화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패전 이후 지난 80년간 고도경제성장기를 통해 번영을 구가하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악몽을 거쳤다.

일본정부와 기업은 기나긴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지만 안팎의 사정은 만만치 않다. 일본은 전후 80년을 맞아 부활을 이뤄낼 수 있을까.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1956년 일본정부가 발행한 경제백서 서문에는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전쟁의 참화에서 전후 부흥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더 이상 가난한 패전국이 아니라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NB)는 올해 초 ‘쇼와 100년의 교훈’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쇼와’는 입헌군주국가인 일본의 연호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전 일왕이 재위한 시기를 말한다. 1925년 즉위 이후 100년을 맞아 각계 인사 인터뷰 형식을 빌어 일본의 경제적 번영과 쇠퇴, 나아갈 길을 담았다.
일본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 1968년 미국에 이어 국민총생산(GNP) 2위의 경제대국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요인이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기술력, 일본식 고용 및 노사관계 등이 맞아떨어져 빠른 성장을 견인했다. 여기에 대장성(현 재무성)을 중심으로 엘리트 경제관료가 주도하고, 기업과 은행이 상호 주식보유 등 선단식 경영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중했던 점도 꼽을 수 있다.
시마니시 도모키 닛쿄대학 교수는 “전후 석탄과 철강산업에 자금과 사람을 집중 투입해 생산을 확대했다”며 “정부는 부흥금융금고를 통해 이들 산업 노동자에 대한 저리 대출로 주택을 공급하는 등 생산확대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정 기간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이른바 ‘경도생산방식’이다.
한국전쟁도 빼놓을 수 없다. 요시가와 히로시 도쿄대 교수는 “고도성장의 출발은 1950년 발발한 조선전쟁으로, 전쟁은 전후 처음 설비투자붐을 일으켰다”며 “1951년 압연부문 근대화와 대형화를 가져온 철강산업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내수산업 발전도 성장을 주도했다. 제조업 발전은 농촌인구의 대규모 도시 유입을 불러왔고,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로 몰려든 농촌출신 청년층은 강력한 내수의 기반이 됐다. 도시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각종 가전제품 등 소비재산업이 급성장해 세탁기와 냉장고, TV 등 내구재 소비가 폭발했다.
일본은행 총재의 후회
일본은 패전 이후 1955년까지 ‘전후 부흥기’를 거쳐 1973년까지 ‘고도경제성장기’와 1985년까지 ‘안정성장기’를 통해 30년 이상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이 시기 일본은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등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떨쳤다. 대표적으로 소니의 워크맨은 당시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혁신의 상징이다. 70년대 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으로 세계는 70년대 후반부터 에너지 절약형 경제로 이동했다. 경량화와 소형화로 상징되는 ‘경박단소’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카시노 시즈오 소니 전 부사장은 “첫 워크맨은 회의용 녹음기를 일부 개량해 판매를 시작해 수백만대가 팔리는 대히트를 했다”며 “워크맨 성공신화는 반도체의 소형화 및 고기능화와 정밀금형기술의 진화 등 일본 기술진보의 집약적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미국시장을 휩쓴 도요타와 혼다 등도 절약형 경제를 주도한 대표적 기업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은 번영에서 사치와 허영, 욕망의 경제로 이동했다. 1991년까지 이어진 ‘버블 경제기’는 몰락을 잉태하며 무한질주했다. 플라자합의 직전 240엔대 엔달러 환율은 10개월 만에 150엔대로 급락하고 엔화 가치가 폭등하면서 모든 불행의 시작을 알렸다. 일본은행은 엔화가치 급등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은행은 부동산 대출 등 무한 신용팽창에 나섰고, 기업과 가계는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자산을 몰빵했다.
버블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산가격 거품에 위기를 느낀 일본은행은 1989년부터 빠르게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90년부터 무분별한 부동산대출을 막기 위해 대출총량 규제와 은행 창구지도를 시행했다. 버블 붕괴의 뇌관을 당긴 것이다. 닛케이지수는 1992년이 되자 최고점 대비 60% 이상 폭락했다. 1991년 정점을 찍은 땅값은 끝없이 추락해 오사카 상업지구 공시지가는 최고가 대비 10%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거품 붕괴는 일본의 감춰진 부실을 전면에 드러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크고 작은 은행과 금융회사가 무너졌다. 특히 주택대출을 전문으로 하던 회사(주전)는 버블 붕괴와 함께 부실채권을 끌어안고 공적자금을 먹는 원흉이 됐다. 기업도 1990년대 이후 빠르게 경쟁력을 상실했다. 아사다 아츠시 전 샤프 부사장은 “일본 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전부 맡는 수직적 통합구조가 일반적이어서 품질과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지게 됐다”고 말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저서에서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국민의 의식속에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와 버블의 붕괴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대규모 부실 채권의 심각성을 일찍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토로했다.
“고도성장기 야수적 본능으로 돌아가야”
버블 붕괴의 대가는 컸다. 일본은 1991년 이후 30년간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소비자물가, 근로자임금이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오히려 후퇴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대만 등 신흥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중국은 더 이상 일본이 감당하기 어려운 G2 국가로 올라섰다. 명목GDP는 독일에 뒤져 4위로 추락했고, 내년 이후 인도에도 밀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본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만만치 않다. 지난해 실질GDP 성장률은 0.1%에 그쳤다. 아베 전 총리의 무제한 돈풀기 정책도, 기시다 내각의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위한 각종 정책에도 경제적 활력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와 기업의 경쟁력 약화, 인적자원의 취약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타미 히로유키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는 과도한 주주중시 경영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2021년 사상 처음으로 주주배당이 설비투자액을 웃돌았다”며 “이는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요시가와 히로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도성장기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기업의 야수적 본능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글로벌 패권 전쟁으로 조성된 세계경제 흐름에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일본정부와 일본은행이 지난 10여년 동안 벗어나고 싶어했던 디플레이션 탈출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달 초 “일본은 현재 인플레이션 상태”라고 선언했다. 지난 30년 디플레이션이 기업과 가계를 초식성 동물로 퇴화시켰다면, 가격이 변화하는 인플레 경제에서 야수적 본능이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다이와총합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일본기업이 버블 붕괴 이전의 투자 정신을 되살리면 실질GDP는 추가로 10% 이상 상향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일본 내각부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1956~1973년 고도성장기에 연평균 9.3%씩 성장했고, 1974~1990년 안정성장기에 연평균 4.1% 성장했다.
하지만 1991년 버블이 붕괴한 이후 2023년까지 무려 30여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0.8%에 그쳤다. 특히 이 기간 연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였던 해가 8년에 이를 정도로 장기 저성장을 보였다. 지난해도 0.1% 성장에 그쳐 일본 정부의 재도약 의지가 현실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문제는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1961년부터 2000년까지 40년간 연평균 9.1%씩 성장했지만, 이후 2024년까지 연평균 3.5% 성장에 그쳤고, 특히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지난해까지 평균 2.0%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이 1.5%에 그치고, 앞으로 장기 저성장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G2간 패권경쟁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에서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두 나라의 경제적 협력을 더 확장하고 심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일이 유럽연합(EU)과 같은 단일시장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수준을 넘어 노동의 이동 등 보다 높은 차원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