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북극 실크로드와 신 유라시아 지정학

2025-03-06 13:00:04 게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새로운 유라시아 지정학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러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될 경우 중러 밀착이 이완되고 미국은 중국 견제에 전념하는 안보지형 변화를 예측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에 따라 북극항로를 둘러싸고 잠재해 있던 지정학 갈등과 새로운 해양패권 경쟁이 부각될 전망이다.

2030년대에는 북극항로 물류가 상용화된다. 이에 대한 선점 경쟁은 이미 뜨겁다. 신 유라시아 패권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군사적 이합집산도 선명해질 것이다. 중러가 미국에 맞서 견고한 연대를 고수할지, 아니면 ‘리버스 닉슨(Reverse Nixon)’ 전략으로 ‘미국·러시아 대 중국’ 판도가 조성될지 관심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이사회(AC) 활동이 중단되는 등 북극지역 국제기구는 사실상 붕괴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2023년 3월 북극항로 상용화를 외교정책 우선목표로 삼고 비북극권 국가에 북극지역 개발 참여의 우호적인 협력조건을 제시했다. 서방 제재의 벽을 뚫기 위해 북극항로를 경제 복원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의도다.

러시아 북극 연해 620만㎢의 동토지대는 철광석 구리 우라늄 희토류 등 2408조원 가치를 지닌 골드러시(Gold Rush) 시장이다. 미국 지리학회(USGS)에 의하면 북극해에는 지구상 개발되지 않은 원유의 13%, 천연가스의 30%가 묻혀 있다.

북극항로를 둘러싼 물류패권 쟁탈전

러시아의 구상에 가장 적극 호응한 나라가 중국이다. 푸틴 대통령이 2023년 10월 베이징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밝힌 북극항로의 국제운송회랑 만들기 초청에 발빠르게 동참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15년 러시아와 ‘북극해항로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2017년 7월 ‘빙상 실크로드’ 발표 및 2018년 ‘북극정책 백서’를 발간하면서 북극 진출 전략을 공식화한 바 있다.

2024년에는 중-러 수교 75주년 공동성명에 ‘북극항로 협력’ 조항을 넣고, 정기 소통 기제로서 ‘북극항로협력 분과위원회’를 출범시켰다. 7월부터는 북극해를 경유하는 1만3000km의 중-러 해운 철도 복합항로 운항도 시작했다.

하지만 북극해 지역에 건설되는 인프라 구축은 경제 수익과 군사적 목적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중국의 북극 참여에 연안국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북극의 ‘군사화(militarization)’에 나섰다고 의심한다. 이에 미국은 2022년 10월 새 ‘북극전략’을 공개하고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법과 규범에 기초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미 군함의 ‘항행의 자유’ 순찰을 포함해 북극항로를 러시아 통제 밖의 국제항로로 바꾸려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러시아는 북극해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쇄빙선 함대 건설과 수색구조 인프라 구축 등 일련의 EEZ 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은 2024년 10월초 해경선 2척을 파견하여 북극해에서 러시아와 합동순찰 훈련을 했다.

이처럼 북극해 지정학을 둘러싼 신경전은 가열되고 있다. 중국의 북극항로 개발 협력은 러시아와 유라시아 공동패권 기반을 강화하려는 수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통제권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무엇보다 북극권을 무대로 펼쳐지는 전략미사일 방어시스템 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극해를 중심으로 새롭게 펼쳐질 강대국 정치의 향배는 어떨까? 예측 불가의 트럼피즘 만큼이나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 상황에서 ‘리버스 닉슨’ 전략이 당장 통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평가다. 일시적인 미-러 타협은 세력균형으로 전환일 뿐 기존의 판도 변화 동력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반면 중러 관계엔 전통적인 불신과 한계가 있지만 미국 견제라는 공동 목표만큼은 확고하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동방정책과 글로벌 사우스 접근이 더 절실하다. 그래서 러시아의 북극항로 활성화는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와 전략적 연대를 필요로 한다.

신 시대 북극항로에 빨리 올라타야

이제 우리도 북극항로 편승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역사는 새로운 길이 열릴 때 새로운 시대가 펼쳐졌다는 걸 증명해준다. 비단길 향신료길 대서양항로 수에즈운하가 그 사례다. 지난 역사의 새 시대를 열어준 통로는 한반도를 멀리 비켜 갔지만 다가올 큰 길 북극항로는 다행히 우리가 그 길목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13일 부산시의 ‘북극항로 개척 TF’ 발족은 의미가 있다. 중국 러시아와 지경학적 협력의 접점을 북극 개발에서 찾는 방법이 필요하다.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 전 중국 심양주재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