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존도 큰 캐나다, 만시지탄 목소리

2025-03-06 13:00:05 게재

대미 수출의존도 65%, 미국에 발목 잡혀 … 캐나다인 27% “이제 미국은 적”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행하는 보수적 색채의 일간지 ‘내셔널포스트’는 지난달 중순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캐나다를 병합하려던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930년대 미국이 세웠던 ‘워 플랜 레드(War Plan Red)’, 즉 캐나다와 얽인 전쟁 전략에 대한 내용이다.‘워 플랜 레드’는 1925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군사전략가들이 만들었다. 처음에는 캐나다를 위협 요소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주된 표적은 대영제국이었다. 이 계획에서 ‘레드(RED)’는 영국을 의미했고, 캐나다는 ‘크림슨(CRIMSON)’, 미국은 ‘블루(BLUE)’로 표기했다.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4일(현지시간)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서 보복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CTV

1974년 기밀에서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CRIMSON의 영토는 광대하지만, 개발된 지역은 대부분 BLUE 국경 근처에 있기 때문에 BLUE의 공격에 특히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1925년 당시에는 캐나다를 합병하기보다 일시적으로 점령해 영국에 대한 공격 거점으로 활용한 뒤 전쟁이 끝나면 철수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935년 개정안에서는 “확보한 캐나다 영토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전쟁계획도 구체적인데, 먼저 캐나다 동부에 있는 해군기지 핼리팩스를 점령한 후 몬트리올을 장악하고, 오대호(Great Lakes) 수로를 통제하며, 캐나다 서부로 진격한다는 작전이다. 또한, 온타리오주 서드베리의 니켈 광산을 확보해 영국군의 자원 공급을 차단하고, 미국의 군수물자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캐나다 중부의 매니토바주 위니펙 철도망을 끊고, 캐나다 서부의 해군기지를 장악한다는 목표도 들어 있다.

약 100년 전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내셔널포스트’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협상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고 적었다.

얼어붙은 동맹관계

불과 몇 달 전까지 캐나다와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에 한목소리를 내는 가장 확실한 동맹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캐나다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에다 잊을 만하면 “51번째 주 편입”을 트럼프가 입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금언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트럼프정부가 캐나다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를 시작했을 때 저스틴 트뤼도 연방총리는 “캐나다 경제를 완전히 붕괴시켜 미국이 우리를 합병하기 쉽게 만들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위대한 국가를 지키는 데 있어 감당하지 못할 대가는 없다”며 캐나다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뤼도 총리는 최근 토론토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도 트럼프의 합병 시도를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real thing)”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 폭스뉴스 진행자가 캐나다 합병 시도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맞다(Yes, it is)”면서 캐나다가 미국의 주가 되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며, 현재 미국은 매년 캐나다에 200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캐나다 합병에 대해 캐나다 정치권도 점점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스티븐 하퍼 전 연방총리는 최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캐나다의 독립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면서 “만약 내가 여전히 총리였다면 나는 국민들을 가난하게 만들더라도 미국에 합병되지 않도록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보수당을 이끌며 22대 연방총리를 지냈다.

지난달 27일 온타리오주는 주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보수당 대표였던 덕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좀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조기 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여당인 보수당은 124석 가운데 압도적 다수인 80석을 차지했다.

포드 주총리는 지난 3일 새 임기를 시작하는 기자간담회에서도 “온타리오를 초토화하려 시도한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주저하지 않고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들도 고통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두배로 강하게 반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일 미국이 관세 부과를 현실화하자 온타리오에서 미국 뉴욕, 미시간주 등으로 송전하는 전력에 수출세를 부과했다. 또한 트럼프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일런 머스크와 맺은 위성통신 서비스 계약도 파기해버렸다.

앤드류 퓨리 뉴펀들랜드 주총리는 지난달 중순 캐나다 각 지역 지도자들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뒤 “(백악관 관계자가)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통령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그것을 유머로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캐나다와 가장 가까운 동맹, 최대 무역 파트너인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매우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퓨리 주총리는 “이 순간 캐나다의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이 다시 모여 적절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미국 행정부와의 대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냉전 이후 최대 사건 벌어져”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캐나다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스티브 휴윗 박사는 ‘캐나다통신’과 인터뷰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난 100년 동안 벌어졌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라면서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로는 최대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어느 정도는 버려진 상태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트럼프의 합병 위협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 수사학적 표현일 뿐”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란즈 필라이 유콘(Yukon) 주총리는 CBC뉴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글로벌 관계를 재설정하려 시도하고 있다”면서 “캐나다를 지렛대로 활용해 미국이 승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국민들에게 주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빌 블레어 국방장관도 “캐나다인들에게 모욕적이고, 우려되는 점은 있지만 (합병 언급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캐나다의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관측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광물 35개 중 13개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다. 텔루륨, 나이오븀, 우라늄 등이 포함된다. 캐나다는 2023년 기준 미국에 총 298억달러 상당의 핵심 광물을 수출했다.

이런 심상치 않은 정세 변화는 캐나다 내부의 분위기도 바꾸고 있다. 먼저 캐나다 최대 여론조사업체인 리지(Léger)가 2월 중순 캐나다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27%가 미국을 ‘적국’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30%는 여전히 미국을 동맹국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27%는 ‘중립적’이라고 답했다.

리지 관계자는 “미국이 오랜 시간 강력한 동맹국이었음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라면서 “지금 캐나다인들이 느끼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지지하는 정당별로 큰 차이를 보였는데, 보수당 지지자 가운데 48%는 미국을 여전히 동맹국으로 보고 있었고, 18%만 적국으로 간주했다. 반면 37%의 자유당 지지자와 34%의 신민당 지지자는 미국을 적국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프랑스 문화권인 퀘벡주를 중심으로 한 ‘블록 퀘벡당’ 지지자 중에는 거의 절반인 47%가 미국을 적국이라고 봤다.

미국과의 균열에 대한 만시지탄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워 플랜 레드(War Plan Red)’에서 “캐나다는 미국 국경 인근에만 개발이 돼 있고, 공격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100년이 지나도록 이런 지적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책이다.

캐나다의 수출 가운데 65%가량이 미국으로 향한다. 교역 대상국을 다변화하지 못한 게 결국 미국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조차 “캐나다는 미국과의 무역없이는 국가로서 존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캐나다자동차부품제조업협회 관계자는 “사실 이런 논의는 20년 전에 시작됐어야 했다”면서 “지금이라도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교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