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으로 망가진 군, 민가에 전투기 오폭
공군, 항공기 비행제한
군, 실사격 훈련중단
정치권 “납득 어려워”
7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공군은 전날 사고 발생 이후 대북 감시·정찰과 비상대기 등 일부 필수 전력을 제외하고 사고를 낸 KF-16을 비롯한 모든 기종의 비행을 제한하고 있다. 공군은 내주까지는 비행 제한을 유지할 계획이며, 모든 조종사를 대상으로 사고 사례 교육과 비행 전 단계 취약점 심층 교육 등에 착수했다.
주한미군은 사고와 관련은 없으나 한미연합훈련 도중 한국 전력에 의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실사격 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
주한미군은 “미국과 한국군은 모든 실사격 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며 “이 중단에도 계획된 지휘소 훈련(CPX)인 ‘자유의 방패’(FS)는 일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군은 박기완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사고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경위 및 피해 상황 등의 조사에 나섰고, 국방부도 사고대책위를 설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종사가 폭탄 투하 좌표를 잘못 입력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이를 그냥 지나쳤고, 사고 발생 이후 신속한 상황 파악과 대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나타났다. 군 안팎에선 지난해 연말 12.3 비상계엄에 연루돼 국방장관을 비롯해 군수뇌부가 대거 구속되고 장병들 사기마저 극도로 낮아진 상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6일 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분께 경기 포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합동 통합화력 실사격 훈련에 참가한 한국 공군 KF-16 2대가 MK-82 폭탄을 각 4발씩 총 8발을 비정상 투하했다. 이번 훈련과정에서 전투기 두 대가 편대 비행을 하며 폭탄 동시발사 전술훈련을 진행했는데 좌표를 잘못 입력한 1번기 조종사가 먼저 폭탄 4발을 잘못된 지점에 투하하자 2번기 조종사 역시 1번기를 따라 폭탄 4발을 투하했다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다. 2번기 조종사는 제대로 된 좌표를 알고 있었지만 1번기가 폭탄을 투하하자 동시에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1번기 조종사가 좌표를 잘못 입력한 경위에 우선 관심이 쏠린다.
전투기 조종사는 임무 계획을 받게 되면 USB 형태의 저장장치에 키보드 자판으로 표적 좌표를 입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실수가 있었더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다는 점이다. 공군에 따르면 조종사는 △전투기 탑승 후 좌표가 입력된 저장장치를 전투기에 연동할 때 △비행중 등 두 차례 좌표가 정확한지 확인해야 하고 △좌표 지점에 도착했을 때 맨눈으로 표적을 확인하는 등 총 3차례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군 당국은 1번기 조종사가 이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번기 조종사의 대처도 논란이다. 2번기 조종사는 좌표를 제대로 입력했지만 1번기를 따라 오폭했다. 공군은 ‘동시발사 전술훈련’이었기 때문에 2번기 조종사의 입력 좌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1번기 잘못을 알았다면 폭탄 투하에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폭을 한 1번기·2번기 조종사는 위관급으로 각각 400시간, 20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KF-16은 조종사 혼자 타는 기종이다.
항공기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두 전투기는 정상적 투하 시 비행했을 경로에서 벗어났다. 공군 관계자는 “항공기를 레이더상에서 관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예정된 항로를 벗어났다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공군 관계자는 “계획한 경로에서 좀 벗어나서 비행한 건 맞지만 크게 차이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공군 관계자는 조종사들의 건강 상태나 음주 여부 등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현재까지 조종사들에 대해 사고 조사 과정이 이뤄지는 상황”이라며 “음주나 건강 상태는 좀 더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이날 오폭 사고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큰 책임을 느낀다”면서 “평화로운 일상 중 불의의 사고로 다치시고, 크게 놀라시고, 재산상 손해를 입으신 포천시 노곡리 주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신적·신체적·재산상 피해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상해드릴 것”이라며 “공군은 이번 비정상 투하(오폭) 사고를 엄중히 인식하고, 철저히 조사해 문책할 것이며,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정치권도 군 당국을 질타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번 사고는 군 훈련 중 전투기에서 폭탄이 오발된 것으로 추정돼 기본적인 안전 점검과 관리 체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군 당국의 진상조사와 사고 경위 발표, 민간 지역과 인접한 훈련장의 안전 관리 강화 및 대책 마련, 피해 주민에 대한 신속한 지원 및 보상 대책 수립,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훈련 프로세스 개편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이번 사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며 “어떤 이유로 폭탄 8발이 민가에 투하되고 이후에도 실사격 훈련이 계속됐는지, 합참 의장이 사고 발생을 즉시 인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