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우주강국의 꿈과 희박기체역학

2025-03-11 13:00:01 게재

“항공우주공학과 갔더니 4년 내내 역학만 배웠다. 뭔가 더 멋진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역학을 이렇게 많이 배울지는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필자 역시 박사과정까지의 수련과정 중 가장 많이 종류별로 배웠던 것이 역학이기 때문이다. 역학은 물체의 움직임과 힘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잘 만들어 내야하는 항공우주공학자 수련생이 ‘그것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를 배우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 될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이 역학들 중에 유체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항공우주공학자가 만들어 띄우는 비행기 우주선 로켓 등 모든 인공물체는 반드시 지구의 대기와 만나게 돼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 띄우는 물체들이 빠르게 움직여 공기와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우리는 경험적으로 힘을 가하면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러한 힘과 운동의 관계를 수백년 동안 선배학자들이 잘 정립해 놓았다. 기체에 작용하는 힘과 그 움직임을 규명하는 관계식(방정식)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게 편미분방정식이어서 한참동안 풀지 못하고 있었으나 컴퓨터의 개발로 가능하게 됐다.

우주개발시대의 핵심적인 연구분야

“아니, 관계식도 있고 그걸 잘 풀 수도 있으면, 이 분야 연구자들은 이제 뭘 하냐”라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들은 여전히 있다.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길 소망하면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계속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1년 시작돼 2011년 임무종료했던 스페이스셔틀은 우주까지 짐과 사람을 실고 왕복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게 미션이었다. 지구밖에서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스페이스셔틀이 마주하는 지구대기는 매우 특별하다. 첫째는 스페이스셔틀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며(최대 마하 25, 음속의 25배), 둘째는 스페이스셔틀은 우주, 즉 밀도가 매우 낮은 영역에 있다가 지구 대기권을 만나면서 밀도가 매우 높은 영역을 갑자기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스페이스 셔틀은 엄청난 열과 힘을 받게 된다. 이 열과 압력은 물체를 타게 만들 정도로 크다.

재진입 우주비행선을 만들어야 하는 항공우주공학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극한상황에서 어떻게 우주비행선이 망가지지 않고 지구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라는 도전적인 문제다. 큰 열과 압력을 버틸 수 있도록 그냥 무겁고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면 되지만 무게는 모두 비용이다. 무한정 단단하게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하며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하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도대체 재진입 비행체 주변의 유동환경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런 연구분야를 ‘희박기체역학’ ‘극초음속 기체역학’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지구밖 대기가 희박한 영역에서 기체의 움직임과 매우 빠른(극초음속) 기체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류가 우주로 가지 못했던 1950년대 이전에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연구분야였지만 우주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핵심적인 학문분야로 여겨진다.

필자는 ‘희박기체역학’을 전공했고 이 분야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때 이 분야를 전공하며 “내가 전공을 살려 연구자로 살면서 한국에 직업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때는 한국이 만든 발사체도, 스스로 우주에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희박기체를 전공한 필자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난 후 독일로 유럽으로 다시 미국으로 한참을 더 떠돌고 2021년이 되어서야 한국에서 자리를 얻어 귀국할 수 있었다.

탐구하고 싶은 분야에 용기 있는 도전을

한국에서 우주개발과 산업에 발전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그 의지를 보여주는 예는 필자 자신”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국가의 의지는 세금을 받아 운영되는 기관들의 채용으로 제일 먼저 나타난다. 전세계를 봐도 박사를 받고 관련 연구를 지속하는 연구자가 200명 남짓인 희박유체 전공자가 한국에 정규직을 얻은 것은 한국의 우주개발의 의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주를 향한 우리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에는 새로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연구 분야의 인재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항공우주공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잘 팔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탐구하고 싶은 분야라면 더욱 용기 있게 도전해도 좋겠다.

전은지 카이스트 교수 항공우주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