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 빅테크 보호정책’에 한국 플랫폼법 표류 위기

2025-03-11 13:00:01 게재

트럼프 이어 미 FCC 위윈장, 유럽 빅테크 규제에 비판

“미 언론자유와 양립 불가, 자국기업 차별 대우” 주장

한국 정부의 플랫폼법 제·개정 움직임에도 영향 줄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빅테크를 겨냥한 유럽연합(EU)의 규제정책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사진)와 미국 부통령, 하원에 이어 연방통신위원회(FCC)까지 나서 EU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FCC는 특히 구글·메타 등 자국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을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 기업의 이익을 옹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보복관세 부과 가능성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때문에 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 규제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규제하면 관세보복” 으름장=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달 각국의 ‘비관세 장벽’을 고려해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백악관은 캐나다와 프랑스가 자국 기업들에 대한 디지털세를 걷고 있다며 이를 대표적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이어 브랜던 카 FCC 위원장은 지난 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5 행사에서 유럽의 빅테크 규제에 대해 “과도하다”며 자국 빅테크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 FCC 상임위원 시절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특정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했던 규정을 철회하는 데 기여했다. 또 구글과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네트워크 대역폭을 많이 쓰는 콘텐츠 제공 사업자(CP)가 네트워크 유지·확장 비용을 ISP와 분담하도록 하는 ‘망 공정기여’를 지지하며 ‘빅테크 규제론자’로 불렸다.

하지만 카 위원장은 트럼프 정부 기조에 따라 ‘자국 우선주의자’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유럽 규제 중 디지털서비스법(DSA)를 지목했다. 그는 “미국의 자유로운 언론 전통과 양립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DSA가 사실상 검열법이며 자국 이권을 침해한다는 뜻이다.

유럽연합이 지난해 2월 전면 시행한 DSA는 구글·메타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이 자사 플랫폼에서 혐오 표현과 아동 성착취물 등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지 않도록 유해 콘텐츠를 감독·조처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했을 땐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카 위원장은 “우리 정부는 빅테크가 지난 몇 년간 본 검열을 중단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며 “미국 빅테크에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목소리를 내어 미국 기업 이익을 옹호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DSA가 검열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토마스 레니에 대변인은 “DSA와 같은 디지털 법률 목적은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플랫폼이 합법적인 콘텐츠를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없다”며 DSA 취지를 오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선택은 = 미국이 DSA를 직접 언급하면서 우리 정부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국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등이 미국이 반발할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올해 초 업무계획에서 플랫폼 기업의 이용자 보호 책무를 강화하는 ‘한국판 디지털서비스법’ 제정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온라인서비스이용자보호법’(가칭) 도입을 추진한다. 이 법은 DSA와 같이 플랫폼 사업자가 혐오 표현, 저작권 침해 등 불법 콘텐츠에 대해 정부 요청에 따라 삭제하도록 하고 알고리즘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의무를 진다.

한국판 DSA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미국 정부가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 추진 중인 플랫폼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추이도 주목된다. 이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4대 반경쟁행위를 한 경우 제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은 물론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등도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법은 문재인정부 당시부터 추진됐지만 재계 반발에 부닥쳐 지금까지 표류해왔다. 재계 반발의 요지는 “토종 플랫폼의 혁신을 저해하고 해외 빅테크의 이익만 키울 것”이란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뒤 빅테크를 보유한 미국으로부터 같은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은 국내기업과 해외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 국내외 대형 플랫폼업체가 독점 지위를 이용해 반칙행위를 할 때만 규제대상이 된다”면서 “미래산업인 플랫폼산업이라고 해서 독점적 폐해까지 규제하지 말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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