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퇴직연금’ 벤처투자 적극 참여자 될까

2025-04-02 13:00:55 게재

벤처업계 “벤처생태계는 한계에 봉착”

벤처펀드 3분의 2가 연평균 15.7% 수익

‘벤처투자는 위험자산’ 인식 해소가 관건

연기금과 퇴직연금이 벤처투자의 큰손으로 나설까. 최근 벤처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연기금과 퇴직연금이 주목받고 있다. 벤처업계는 본격 공론화를 시작했다. 정부도 긍정적이다. 부정적 기류도 만만치 않다. ‘벤처투자는 위험자산’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벤처생태계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간담회’. 이 자리에서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퇴직연금과 연기금이 벤처투자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특히 퇴직연금의 역할을 강조했다. 퇴직연금이 모태펀드처럼 기능하면 벤처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의 주장은 벤처업계의 ‘혁신산업 금융유동성 강화’와 맞닿아있다. 벤처업계가 정리한 ‘벤처생태계 활성화 과제’ 중 첫번째에 오른 주제이기도 하다.

생태계 기반인 벤처투자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벤처업계가 “현재 벤처생태계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투자 감소로 생태계 위기 = 2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시장은 최근 15년간(2008~2023년) 연평균 16% 성장세를 보였다. 전세계 성장률 13%를 크게 상회했다. 하지만 최근 벤처투자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벤처투자(11조9457억원)는 2021년 이후 가장 적었다. 건당 투자금액과 기업당 투자금액도 4년째 내리막이다. 초기기업(3년 미만) 투자비중은 5년 연속 줄었다.

2023년 기준 전체 벤처기업의 영업이익도 사상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전체 벤처기업 영업이익 총액은 2022년말 1조1520억원에서 2023년말 4219억75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무려 1조5740억원이나 급감했다

지난해 창업한 기업(118만2905개)은 2016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적었다. 창업의 질을 보여주는 기술기반 창업도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벤처투자 하락세는 민간투자 감소와 연관돼 있다.

최근 벤처펀드 투자는 정책금융이 이끌었다. 벤처캐피탈(VC) 연기금 금융기관 등 민간부문 투자는 8조1324억원으로 1년전(10조8558억원)보다 25.1% 감소했다. 비중도 83.3%(2023년)에서 77.0%로 줄었다. 민간부문 투자는 2021년 이후 감소세다.

벤처투자 전체규모도 경쟁국과 비교해 작다. GDP 대비 벤처투자 비율이 이스라엘의 1/7, 미국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미국의 인공지능(AI)분야 벤처투자액만 약 70조원에 달한다.

주요국은 전세계 유동성을 유치해 투자재원을 확충한다. 반면 글로벌 벤처캐피탈(VC)의 국내 벤처투자는 2023년 전체 벤처투자의 2% 수준에 그쳤다. 국내 벤처투자 참여가 소수 법인, 금융기관 중심으로 이뤄져 벤처투자 참여 여력도 제한적이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은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AI 등 첨단기술(딥테크)에 투자하기에는 턱없이 작다”고 지적했다. 딥테크 기업은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생존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바이오기업의 52%가 매출 발생까지 10년 이상 소요됐다.

◆민간투자 확대가 중요 = 민간투자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연기금과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요구가 지속되는 배경이다. 벤처업계는 특히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정부도 반응이 호의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선진 벤처투자 시장도약방안’을 발표하며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기금에서는 우려가 크다. 벤처투자는 위험자산이라는 인식을 지배적이다. 고위험 투자에 국민의 노후대비 자산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와 달리 벤처펀드 내부수익률(IRR)은 8.7%를 기록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1987년 벤처투자조합 제도화 이후 2024년 6월까지 청산된 1107개 펀드(16조3000억원)를 분석한 결과다.

66% 펀드가 수익(연평균 수익률은 15.7%)을 냈고 34% 펀드는 손실(손실율 10.8%)을 기록했다. IRR 8.7%는 1995년부터 2023년까지 ‘국고채 5년물’ 수익률 5%와 ‘국고채 10년물’ 수익률 3.9%를 넘는다.

연기금도 벤처투자로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연기금 벤처투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연평균 수익률은 국민연금 13.9%, 사학연금 10.1%, 공무원 연금 9.2%이었다. 과학기술공제회는 11.9%, 고용보험 기금은 무려 17.2%의 수익률을 실현했다.

반면 퇴직연금은 지난 5년과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로 낮았다. 2017~2021년의 5년간 수익률은 국민연금(연평균 7.63%)의 4분의 1에 불과한 1.94%였다.

벤처투자가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는 달리 검증된 투자처인 셈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연기금의 벤처투자는 활발하다. 반면 우리나라 연기금 68곳 중 6곳만 벤처투자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도 연기금 투자 활발 = 중기부는 연기금 금융사 등의 벤처투자자로 적극 유도한다.

올해 신설한 ‘LP 첫걸음 펀드’가 첫걸음이다. 펀드 출자예산 200억원도 편성했다. △모태펀드가 일대일 매칭 출자 △우선손실충당 △풋옵션 등 파격적 인센티브도 제공할 계획이다. 연기금, 기획재정부의 연기금투자풀 등의 신규 벤처투자와 투자규모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기금운용평가 벤처투자 가점기준(최대 1점) 개편도 추진한다.

퇴직연금 가입 기업과 퇴직연금사업자 대상으로 벤처투자 참여관련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장은 “벤처기업은 한국경제가 어려운 시기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다”며 “현재 대한민국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연기금과 퇴직연금이 벤처투자에 적극 참여해 벤처생태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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