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19 비양도 둘레길

천년전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전설의 섬

2025-04-04 13:00:03 게재

제주 비양도(飛揚島)는 고려시대 바다에서 불쑥 솟아났다는 전설의 섬이다. 중국에서 오름 하나가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으니 섬은 그야말로 신화의 무대다.

백섬백길 57코스인 비양도 둘레길은 해안을 따라 섬 둘레를 그대로 한바퀴 도는 길이다. 3.5㎞에 불과하니 느릿느릿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둘레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하다. 섬에서도 이런 걷기 천국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양도는 고려 시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고적’에는 “고려 목종 10년(1007년),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니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살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 속의 서산을 비양도로 비정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2002년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화산 활동으로 솟아났다거나 중국에서 날아왔다는 전설과 함께 하는 비양도. 사진 섬연구소 제공

화산 활동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닷속에서 산이 솟아난 그날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태학박사 전공지는 “주민들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 가려 하지 않자 몸소 산 아래까지 나아가 그 형상을 그려서 바쳤다”고 했지만 나는 그 또한 두려워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건너다보고 돌아가 왕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박사든 무학의 백성이든 처음 보는 놀라운 사건 앞에서는 모두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양도가 화산 활동으로 솟아났다거나 중국에서 날아왔다는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 뿐 사실은 별개다. 2003년 비양도 학술조사 과정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섬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비양도는 섬이자 기생화산이다. 한림에서 5㎞, 협재에서는 3㎞ 거리다. 면적 0.5㎢, 해발 114.7m, 동서 길이 1.02㎞, 남북 길이 1.13㎞의 아주 아담한 섬이다. 섬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인데 섬 중앙에 비양봉과 2개의 분화구가 있다.

물이 빠지면 화산석의 해변은 온통 먹빛이다. 해변을 따라가면 펄랑못과 코끼리바위와 호니토 등을 만날 수 있다. 호니토(hornito)는 흐르는 용암 위에 생기는 화덕 모양의 가스 분출구인데 섬에서는 ‘애기 업은 돌’이라 불린다. 애기 업은 돌의 내부는 비어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밖에도 해변에는 화산탄, 스코리아, 집괴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애기 업은 돌’은 아이를 업고 서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이 바위에 기원을 드리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

비양봉에는 국내에서 비양도에만 자생한다는 비양나무(바위모시) 군락지도 있다. 비양나무는 비양봉 분화구 안에 있는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비양봉의 등대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얼마 안 되는 농토지만 비양도 사람들은 집집이 무, 배추와 마늘, 양파 따위의 반찬거리 채소를 길러 먹는다. 밭들이 대부분 울타리가 처져 있고, 그물로 하늘을 덮기도 했다. 방목하는 염소나 새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함이다.

걷기를 마치고 선창가에서 비양도 특산 보말죽 한 그릇을 먹고도 뱃 시간이 남으면 걸었던 반대편으로 섬을 한 바퀴 더 걸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걷는 방향이 달라지면 섬이 보여주는 풍경도 달라진다. 특별한 경험을 마다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