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빛과 싸우는 디스플레이
야외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절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SNS로 공유하는 시절,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반사된 강한 자연광은 여러모로 거슬린다. 외광 반사는 디스플레이가 전달하는 영상의 화질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야외처럼 밝은 곳에서는 화면 밝기를 의도적으로 키우거나 반사방지 기술을 적용한다.
빛의 반사를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령 표면에 미세한 나노구조물을 새겨 입사하는 빛을 여러 방향으로 퍼뜨리며 반사광의 시인성을 줄이기도 하고 때론 빛의 편광을 활용한다. 빛은 전자기파동이다. 모든 파동은 무언가 진동하며 에너지를 나르는 현상을 일컫는다. 음파는 공기가, 수면파는 물이, 전자기파에선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며 에너지를 전달한다. 수면파가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물이 진동하듯이 빛의 전기장과 자기장도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진동하기에 이들을 횡파라 부른다. 편광은 이 전기장의 진동방식을 부르는 용어다.
줄의 한 끝을 기둥에 묵고 다른 끝을 손으로 잡고 흔들어 줄의 파동을 만드는 상황을 상상하자. 줄을 위아래로 흔들어 기둥 쪽으로 파동을 보내면 기둥에 선 친구에게는 줄이 위아래 선을 따라 진동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줄의 파동을 빛으로, 줄의 진동을 전기장의 진동으로 바꾸면 전기장이 수직으로 진동하는 편광이 된다. 이를 수직 선형편광이라 부른다.
줄을 좌우로 흔들면 수평 선형편광에 대응된다. 줄을 원의 형태로 흔들면 흡사 나선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띠는 원형파동이 만들어진다. 빛의 전기장이 원의 형태로 진동하며 나아갈 땐 원형편광을 갖는다. 왼나사, 오른나사가 있는 것처럼 전기장의 회전방향에 따라 좌 원형편광과 우 원형편광으로 나뉜다.
편광판의 빛 흡수 해결 위해 노력
이제 스마트폰 화면에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빛의 편광으로 반사를 어떻게 억제하는지 알아보자. 조명이나 햇빛은 전기장의 방향이 제멋대로 바뀌며 마구 뒤섞여서 특정 편광이 지배하지 않는 무편광의 빛이다. 무편광 빛은 수직 및 수평 선형편광이 절반씩, 혹은 좌 및 우 원형편광이 절반씩 섞인 빛으로 간주할 수 있다.
OLED 표면엔 두 원형편광 중 하나를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흡수하는 원형편광판이 있다. 가령 이 편광판이 햇빛의 좌 원형편광을 흡수하고 우 원형편광을 통과시킨다고 하자. 통과된 우 원형편광은 OLED 내부를 지나 뒷면의 금속 전극에서 반사하면서 회전방향이 바뀐다. 우에서 좌 원형편광으로 변한 빛이 OLED 화면에 설치된 편광판을 지날 땐 흡수되면서 외광반사가 억제된다.
하지만 편광판은 반사광만 없애진 않는다. OLED는 내부의 얇은 유기물에서 무편광의 빛을 만든다. 영상정보를 갖고 사용자에게 가는 이 빛이 편광판에서 절반이나 흡수되는 게 문제다. 원형편광판으로 야기되는 OLED의 효율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해 왔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원형편광의 빛을 생성하는 OLED다. 이 빛은 당연히 OLED의 편광판이 통과시키는 회전성을 가져야 한다. 이 경우 OLED가 만든 빛은 편광판을 그대로 통과하면서 외광반사는 억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관건은 OLED가 가능한 한 순수한 원형편광의 빛을 방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형편광의 비중이 떨어지면 편광판에 의한 흡수도 늘어나 효율 향상에 한계가 있다. 전기장이 나선형으로 진동하는 원형편광을 만들려면 OLED 내부에 소위 키랄(chiral) 구조가 필요하다. 키랄 구조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자기의 거울상과 겹치지 않는 비대칭 구조인데 나선형 구조가 한 예다. 나선 구조의 꼬인 방향에 따라 원형편광의 회전방향이 결정된다.
OLED,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해 생활에 도움
올 3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선 초분자의 나선구조를 이용한 OLED를 선보였다. 초분자란 분자들을 레고블록처럼 조립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구조체를 말한다. 논문 저자들은 원형편광의 비중을 높인 빛을 고효율로 방출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초분자 기반 OLED의 제작에 현재 공정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돋보였다.
OLED는 화면이 고정된 디스플레이를 넘어 접는 폴더블, 말리는 롤러블, 증강현실 구현에 활용되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투명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원형편광을 방출하는 OLED는 더욱 밝은 화면의 구현을 가능케 하며 응용의 폭을 넓힐 것이다. 게다가 빛의 편광성을 활용하는 다른 정보 처리용 광전자 소자나 바이오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시장 주도권을 갖고 있는 OLED 분야에서 향후 어떤 신기술들이 우리 삶으로 들어와 자리잡을지 기대된다.
한림대학교 교수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